“느낌도 … 인식도 … 의지적 형성도 … 의식은 무상하느니라.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고, 괴로운 것은 무아니라. 무아인 것은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나는 이것이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하느니라.”
Vedanā … saññā … saṅkhārā … viññāṇaṁ aniccaṁ. Yadaniccaṁ taṁ dukkhaṁ; yaṁ dukkhaṁ tadanattā; yadanattā taṁ ‘netaṁ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evametaṁ yathābhūtaṁ sammappaññāya daṭṭhabbaṁ.
상윳따 니까야 SN 22.76 아라한경 (Arahantasutta)배경
물질에 적용한 관찰이 나머지 네 무더기로 이어집니다. 느낌·인식·의지적 형성 뒤의 세 생략 표시는 각각 앞과 같은 무상·괴로움·무아, 세 가지 부정, 바른 지혜의 관찰이 반복됨을 가리킵니다. 의식에서는 그 형식이 다시 온전히 나타나 반복 범위를 닫습니다. 따라서 물질·느낌·인식·의지적 형성·의식 가운데 어느 하나도 예외가 되지 않습니다. 수행의 뜻은 이 경험들을 미워하거나 없애는 데 있지 않고, 변하는 경험을 내 것·나·나의 자아로 굳히는 관계를 바른 지혜로 살피는 데 있습니다.
묵상
느낌·인식·의지적 형성·의식 가운데 요즘 가장 쉽게 “나”라고 여기는 하나가 있나요? 그 경험이 일어나고 달라지는 모습을 잠시 구별해 보면 세 부정은 어떻게 다르게 들리나요? 지금은 어느 항목도 잡히지 않거나 이 질문을 건너뛰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