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매임에서 풀려나 할 일을 마쳤음을 알다

다섯 무더기에 대한 싫증에서 탐욕의 빛바램·해탈·해탈의 앎으로 나아가 아라한을 으뜸이라 밝힙니다.

“수행자들이여, 이렇게 보는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 싫증이 나고, 느낌에도 … 인식에도 … 의지적 형성에도 … 의식에도 싫증이 나느니라. 싫증이 나 탐욕이 빛바래고, 빛바램으로 해탈하며, 해탈하면 ‘해탈했다’고 아느니라. 그는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완성되었으며, 해야 할 일을 마쳤고, 다시 이런 존재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아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중생의 거처가 있는 한,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르기까지 아라한들이 세상에서 으뜸이고 뛰어나느니라.”

Evaṁ passaṁ, bhikkhave, sutavā ariyasāvako rūpasmimpi nibbindati, vedanāyapi … saññāyapi … saṅkhāresupi … viññāṇasmimpi nibbindati. Nibbindaṁ virajjati; virāgā vimuccati. Vimuttasmiṁ vimuttamiti ñāṇaṁ hoti. ‘Khīṇā jāti, vusitaṁ brahmacariyaṁ, kataṁ karaṇīyaṁ, nāparaṁ itthattāyā’ti pajānāti. Yāvatā, bhikkhave, sattāvāsā, yāvatā bhavaggaṁ, ete aggā, ete seṭṭhā lokasmiṁ yadidaṁ arahanto”ti.

상윳따 니까야 SN 22.76 아라한경 (Arahantasutta)

배경

앞의 무상·괴로움·무아 관찰이 산문 설법의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느낌·인식·의지적 형성·의식 모두에 싫증이 나고, 싫증에서 탐욕의 빛바램, 해탈, 해탈했다는 앎이 순서대로 일어납니다. 이어 태어남을 다함·청정한 삶의 완성·해야 할 일의 마침·다시 이런 존재로 돌아오지 않음이라는 네 선언이 완결을 확인합니다. 마지막은 중생의 모든 거처에서 존재의 꼭대기까지 범위를 넓혀 아라한이 으뜸이라고 밝힙니다. 이는 경험을 혐오하라는 말이 아니라 매혹과 집착이 풀리는 인과를 보여 줍니다.

묵상

싫증·탐욕의 빛바램·해탈·앎이라는 순서에서 지금 가장 오래 머물러 읽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자신의 성취를 판정하지 않고 그 말이 앞뒤와 어떻게 이어지는지만 살필 수 있나요? 답이 없거나 결구를 조용히 읽는 것으로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