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지 않음의 표상이 감각적 욕망을 굶기다

감각적 욕망을 굶기는 첫 문답입니다.

“수행자들이여, 아직 없던 감각적 욕망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고, 이미 일어난 것이 더 많아지고 커지지 못하게 하는 굶김은 무엇인가? 수행자들이여, 아름답지 않음의 표상이 있느니라. 거기에 이치에 맞게 자주 마음을 기울이는 것이 아직 없던 감각적 욕망을 일어나지 못하게 하고, 이미 일어난 것을 더 많아지고 커지지 못하게 하는 굶김이니라.”

Ko ca, bhikkhave, anāhāro anuppannassa vā kāmacchandassa uppādāya, uppannassa vā kāmacchandassa bhiyyobhāvāya vepullāya? Atthi, bhikkhave, asubhanimittaṁ. Tattha yonisomanasikārabahulīkāro—ayamanāhāro anuppannassa vā kāmacchandassa uppādāya, uppannassa vā kāmacchandassa bhiyyobhāvāya vepullāya.

상윳따 니까야 SN 46.51 음식경 (Āhārasutta)

배경

경의 후반부에서 앞서 밝힌 감각적 욕망의 음식을 뒤집어 굶김을 묻는 문답입니다. 굶김은 아직 없던 장애의 발생과 이미 생긴 장애의 증가·확장을 더는 먹이지 않는 관계를 가리킵니다. 답은 아름답지 않음의 표상을 제시하고, 거기에 이치에 맞게 마음을 자주 기울이는 것을 두 결과의 굶김으로 연결합니다. 억지로 장애를 없애라는 명령보다 무엇에 주의를 거듭 두는지가 장애의 조건을 바꾼다는 설명입니다. 여기서 아름답지 않음은 변화나 뜻대로 되지 않음을 대신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아름다움으로만 포장되지 않은 몸과 대상의 면을 뜻합니다. 혐오를 만들라는 명령이 아니라 매력의 표상만 반복해 붙드는 주의를 거두어 감각적 욕망에 먹이를 덜 주는 대응입니다.

묵상

매력적으로 보이는 대상에서 아름다움으로 포장되지 않은 평범한 물질적 면도 차분히 볼 수 있나요? 억지로 혐오를 만들거나 자신의 몸을 평가할 필요는 없어요. 불편하다면 이 질문은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매력의 표상만이 전부인지 가볍게 살펴보아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