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의 고요를 살피지 않으면 고요가 굶다

고요의 깨달음 요소를 굶기는 조건을 밝힙니다.

“수행자들이여, 아직 없던 고요의 깨달음 요소가 일어나지 못하게 하고, 이미 일어난 것이 닦여 완성되지 못하게 하는 굶김은 무엇인가? 수행자들이여, 몸의 고요와 마음의 고요가 있느니라. 거기에 마음을 자주 기울이지 않는 것이 아직 없던 고요의 깨달음 요소를 일어나지 못하게 하고, 이미 일어난 것을 닦아 완성하지 못하게 하는 굶김이니라.”

Ko ca, bhikkhave, anāhāro anuppannassa vā passaddhisambojjhaṅgassa uppādāya, uppannassa vā passaddhisambojjhaṅgassa bhāvanāya pāripūriyā? Atthi, bhikkhave, kāyappassaddhi cittappassaddhi. Tattha amanasikārabahulīkāro—ayamanāhāro anuppannassa vā passaddhisambojjhaṅgassa uppādāya, uppannassa vā passaddhisambojjhaṅgassa bhāvanāya pāripūriyā.

상윳따 니까야 SN 46.51 음식경 (Āhārasutta)

배경

마지막 일곱 문답 가운데 고요의 깨달음 요소를 굶기는 조건을 밝힙니다. 앞서 음식으로 든 몸의 고요와 마음의 고요라는 두 조건을 다시 제시하지만, 이번에는 거기에 마음을 자주 기울이지 않는 것이 굶김입니다. 부정은 요소 자체를 버리라는 뜻이 아니라, 아직 없던 요소의 발생과 이미 생긴 요소의 닦임·완성이 이루어지지 않는 조건을 밝힙니다. 앞뒤 문답을 짝지어 읽으면 같은 대상도 주의를 주느냐 거두느냐에 따라 반대 결과를 낳는 구조가 보입니다. 고요를 결과로만 기다리지 않고 몸과 마음에서 이미 나타나는 작은 안정에 주의를 주는 일이 그 요소의 성장 조건임을 역으로 보여 줍니다.

묵상

몸이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는데도 알아보지 못하고 다음 자극으로 넘어간 적이 있나요? 고요를 오래 붙잡을 필요는 없어요. 지금 가장 덜 긴장된 한 부분을 알아차려 보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