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무더기를 가지고 떠났는지 묻고 답하다

세존이 계행·집중·지혜·해탈·해탈에 대한 앎과 봄의 다섯 무더기를 물으며, 아난다가 그렇지 않다고 답합니다.

“아난다여, 사리뿟따가 완전한 열반에 들면서 그대의 계행 무더기를 가져갔느냐, 집중 무더기를 가져갔느냐, 지혜 무더기를 가져갔느냐, 해탈 무더기를 가져갔느냐, 해탈에 대한 앎과 봄의 무더기를 가져갔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가 완전한 열반에 들면서 제 계행 무더기를 가져간 것도 아니며, 집중 무더기를 … 지혜 무더기를 … 해탈 무더기를 … 해탈에 대한 앎과 봄의 무더기를 가져간 것도 아닙니다.”

“Kiṁ nu kho te, ānanda, sāriputto sīlakkhandhaṁ vā ādāya parinibbuto, samādhikkhandhaṁ vā ādāya parinibbuto, paññākkhandhaṁ vā ādāya parinibbuto, vimuttikkhandhaṁ vā ādāya parinibbuto, vimuttiñāṇadassanakkhandhaṁ vā ādāya parinibbuto”ti? “Na ca kho me, bhante, āyasmā sāriputto sīlakkhandhaṁ vā ādāya parinibbuto, samādhikkhandhaṁ vā …pe… paññākkhandhaṁ vā …pe… vimuttikkhandhaṁ vā …pe… vimuttiñāṇadassanakkhandhaṁ vā ādāya parinibbuto.

상윳따 니까야 SN 47.13 쭌다경 (Cundasutta)

배경

아난다의 세 반응 뒤에 세존이 질문하고 아난다가 바로 답하는 한 문답입니다. 질문은 계행·집중·지혜·해탈·해탈에 대한 앎과 봄의 무더기라는 다섯 항목을 같은 동사로 하나씩 묻습니다. 답은 그 다섯을 같은 순서로 되받되, 원문이 가운데 반복을 줄인 세 자리에 ‘…pe…’를 그대로 둡니다. “아니다”라는 답은 사리뿟따와의 관계가 중요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그가 세상을 떠났어도 아난다가 닦아 온 가르침의 다섯 범주까지 함께 가져간 것은 아니라는 구별입니다.

묵상

소중한 사람을 잃은 뒤에도 그가 길러 주거나 북돋아 준 계행·집중·지혜 가운데 남아 있는 것이 있나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도 괜찮아요. 지금 붙잡을 수 있는 한 가지 배움만 조용히 기억해 볼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