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난다여, 내가 미리 말하지 않았더냐?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헤어지고 갈라지고 달라지게 마련이라고. 아난다여, 여기서 어찌 바랄 수 있겠느냐? 태어나고 생겨나고 조건 지어져 무너지게 마련인 것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느니라.”
“Nanu taṁ, ānanda, mayā paṭikacceva akkhātaṁ: ‘sabbehi piyehi manāpehi nānābhāvo vinābhāvo aññathābhāvo. Taṁ kutettha, ānanda, labbhā. Yaṁ taṁ jātaṁ bhūtaṁ saṅkhataṁ palokadhammaṁ, taṁ vata mā palujjīti—netaṁ ṭhānaṁ vijjati.
상윳따 니까야 SN 47.13 쭌다경 (Cundasutta)배경
아난다가 사리뿟따에게서 받은 것을 기억한 뒤, 세존은 이미 말해 둔 가르침을 다시 불러옵니다.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것과의 관계에는 헤어짐·갈라짐·달라짐이라는 세 표현이 나란히 놓입니다. 이어 태어남·생겨남·조건 지어짐·무너지기 마련이라는 네 성질을 근거로,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결론 냅니다. 이 말은 아난다의 슬픔을 잘못이라고 판정하는 문장이 아니라, 사리뿟따도 조건 지어진 존재라는 사실을 예외 없이 적용하는 대답입니다. 이어지는 나무 비유가 이 논리를 눈에 보이는 장면으로 바꿉니다.
묵상
사랑하는 것과의 헤어짐이라는 말이 지금 너무 가깝다면 이 질문은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받아들였는지 자신을 시험하지 말고, 변하지 않기를 바랐던 마음이 있었다는 사실만 부드럽게 알아차릴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