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이렇게 주장하는 다른 종파 유행자들에게 이렇게 말하라. ‘벗들이여, 마음이 처져 있을 때 어떤 깨달음 요소들은 닦기에 알맞지 않고, 어떤 요소들은 닦기에 알맞은 때입니까? 또 벗들이여, 마음이 들떠 있을 때 어떤 깨달음 요소들은 닦기에 알맞지 않고, 어떤 요소들은 닦기에 알맞은 때입니까?’ 수행자들이여, 이렇게 물으면 그들은 답하지 못하고 더 곤혹에 빠질 것이니라. 무엇 때문인가? 수행자들이여, 그것은 그들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Evaṁvādino, bhikkhave, aññatitthiyā paribbājakā evamassu vacanīyā: ‘yasmiṁ, āvuso, samaye līnaṁ cittaṁ hoti, katamesaṁ tasmiṁ samaye bojjhaṅgānaṁ akālo bhāvanāya, katamesaṁ tasmiṁ samaye bojjhaṅgānaṁ kālo bhāvanāya? Yasmiṁ panāvuso, samaye uddhataṁ cittaṁ hoti, katamesaṁ tasmiṁ samaye bojjhaṅgānaṁ akālo bhāvanāya, katamesaṁ tasmiṁ samaye bojjhaṅgānaṁ kālo bhāvanāyā’ti? Evaṁ puṭṭhā, bhikkhave, aññatitthiyā paribbājakā na ceva sampāyissanti, uttariñca vighātaṁ āpajjissanti. Taṁ kissa hetu? Yathā taṁ, bhikkhave, avisayasmiṁ.
상윳따 니까야 SN 46.53 불의 비유경 (Aggisutta)배경
세존은 수행자들에게 다른 종파의 유행자들을 어떻게 물을지 알려 줍니다. 안쪽 인용의 āvuso는 유행자들에게 하는 호격 “벗들이여”이고, 바깥의 bhikkhave는 세존이 수행자들을 부르는 말입니다. 두 질문은 처짐과 들뜸 각각에서 “알맞지 않은 때”와 “알맞은 때”를 모두 묻습니다. 이 순서와 부정이 이어지는 네 개의 대칭 답을 여는 틀이 됩니다. “그들의 영역이 아니다”는 왜 그들이 답하지 못하는지 밝히는 결론이며, 곧이어 누가 답할 수 있는지가 한정됩니다. 답하지 못함과 그로 인해 더욱 곤혹에 빠짐도 서로 다른 두 결과입니다.
묵상
처짐과 들뜸을 같은 상태로 보지 않고, 각각에 알맞지 않은 것과 알맞은 것을 따로 묻는 질문은 어떻게 들리나요? 오늘 마음을 살펴본다면 처짐과 들뜸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 또는 어느 쪽도 아닌지 모르겠다고 답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