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스러운 답을 줄 수 있는 이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범위를 여래·제자·그 가르침을 들은 이로 한정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이 질문들에 답하여 마음을 만족시킬 이를 나는 신과 마라와 범천이 있는 세상, 수행자와 바라문이 있는 무리, 신과 인간 가운데서 보지 못하느니라. 여래나 여래의 제자나 여기에서 들은 이를 제외하고는 말이니라.

Nāhaṁ taṁ, bhikkhave, passāmi sadevake loke samārake sabrahmake sassamaṇabrāhmaṇiyā pajāya sadevamanussāya yo imesaṁ pañhānaṁ veyyākaraṇena cittaṁ ārādheyya, aññatra tathāgatena vā tathāgatasāvakena vā ito vā pana sutvā.

상윳따 니까야 SN 46.53 불의 비유경 (Aggisutta)

배경

다른 종파의 유행자들이 답하지 못할 질문을 제시한 뒤, 누가 마음을 만족시킬 답을 줄 수 있는지 밝힙니다. 신·마라·범천이 있는 세상, 사문·바라문이 있는 무리, 신·인간 가운데라는 넓은 열거를 먼저 놓고, “보지 못한다”는 부정을 여래·여래의 제자·여기에서 들은 이라는 세 예외로 한정합니다. 이것은 아직 구체적인 답을 제시하는 문장이 아니라 답의 출처를 한정하는 선언입니다. 그 뒤에야 처짐과 들뜸에 대한 네 겹의 답이 차례로 나옵니다. “여기에서 들은 이”까지 포함하므로 답의 근거가 개인적 추측이 아니라 여래에게서 이어지는 가르침임을 드러냅니다.

묵상

“이 질문들에 답하여 마음을 만족시킨다”는 말에서, 정답을 말하는 것과 납득할 수 있게 답하는 것은 어떻게 다르게 들리나요? 요즘 마음에 남은 질문 하나가 있다면 지금은 답을 정하지 않고 그 질문만 떠올려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