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네 가지인가? 수행자들이여, 여기 수행자는 열의에서 오는 집중과 적극적인 노력을 갖춘 성취의 바탕을 닦느니라. 정진에서 오는 집중과 적극적인 노력을 갖춘 성취의 바탕을 닦느니라. 마음에서 오는 집중과 적극적인 노력을 갖춘 성취의 바탕을 닦느니라. 탐구에서 오는 집중과 적극적인 노력을 갖춘 성취의 바탕을 닦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이 네 가지 성취의 바탕은 닦고 많이 익히면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가게 하느니라.”
Katame cattāro? Idha, bhikkhave, bhikkhu chandasamādhippadhānasaṅkhārasamannāgataṁ iddhipādaṁ bhāveti, vīriyasamādhippadhānasaṅkhārasamannāgataṁ iddhipādaṁ bhāveti, cittasamādhippadhānasaṅkhārasamannāgataṁ iddhipādaṁ bhāveti, vīmaṁsāsamādhippadhānasaṅkhārasamannāgataṁ iddhipādaṁ bhāveti. Ime kho, bhikkhave,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apārā pāraṁ gamanāya saṁvattantī”ti.
상윳따 니까야 SN 51.1 이 언덕 경 (Apārasutta)배경
앞의 선언에 이어 “어떤 네 가지인가?”라고 묻고, 열의·정진·마음·탐구를 차례로 답한 뒤 처음의 건넘 선언을 되풀이해 닫습니다. 네 항목마다 ‘…에서 오는 삼매와 적극적인 노력을 갖춘 성취의 바탕’이라는 같은 구조가 붙고, 빠알리 iddhipādaṁ bhāveti도 네 번 나오므로 한국어에서도 ‘성취의 바탕을 닦는다’를 네 번 보존했습니다. 열의와 정진을 하나로 합치거나 마음과 탐구를 설명어로 낮추면 네 갈래의 수와 병렬이 무너집니다. 수행적으로는 삼매가 생겨나는 네 출발점을 각각 적극적인 노력과 결합해 닦고 많이 익힐 때,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향한다는 결론을 보여 줍니다.
묵상
열의·정진·마음·탐구 가운데 지금 비교적 또렷하게 느껴지는 하나가 있나요? 네 가지를 모두 갖추었는지 평가할 필요는 없어요. 그 하나가 삼매와 적극적인 노력에 어떻게 이어지는지 잠시 살펴볼 수 있나요? 아무 연결도 보이지 않으면 오늘은 이름만 구별해 두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