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남과 사라짐을 아는 지혜를 갖추다

마지막으로 재가 신자의 지혜를 묻자,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고 괴로움의 다함으로 이끄는 지혜라고 답합니다.

“그러면 세존이시여, 어디까지로 재가 신자가 지혜를 갖춥니까?” “여기서 마하나마여, 재가 신자는 지혜롭고, 일어남과 사라짐을 아는 지혜를 갖추었느니라. 그 지혜는 성스럽고 꿰뚫으며, 바르게 괴로움의 다함으로 이끄느니라 - 마하나마여, 이만큼으로 재가 신자가 지혜를 갖추느니라.”

“Kittāvatā pana, bhante, upāsako paññāsampanno hotī”ti? “Idha, mahānāma, upāsako paññavā hoti udayatthagāminiyā paññāya samannāgato ariyāya nibbedhikāya sammā dukkhakkhayagāminiyā—ettāvatā kho, mahānāma, upāsako paññāsampanno hotī”ti.

상윳따 니까야 SN 55.37 마하나마경 (Mahānāmasutta)

배경

다섯째이자 마지막 문답은 지혜를 갖춘 범위를 밝힙니다. 답은 재가 신자를 지혜롭다고 한 뒤, 그 지혜가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고, 성스러우며, 꿰뚫고, 바르게 괴로움의 다함으로 이끈다는 수식을 모두 붙입니다. 질문과 결론의 ‘지혜를 갖추다’가 이 성격들을 한 갈래로 묶으며 경을 닫습니다. 수행적으로 여기서 지혜는 단순히 많이 아는 능력이 아니라 생겨남과 사라짐을 보아 괴로움의 다함을 향하는 앎입니다.

묵상

오늘 겪은 것 가운데 생겨났다가 달라지거나 사라진 한 경험이 떠오르나요? 그것을 깊이 꿰뚫었다고 판단할 필요는 없어요. 생각·감정·감각 중 하나가 머물지 않았다는 사실을 잠깐 살펴볼 수 있고, 떠오르지 않으면 건너뛰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