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자녀와 배우자에 대한 제 애착은 버려졌습니다.’라고 대답하면 물어야 하느니라. ‘그런데 존자에게 인간의 다섯 감각 자극에 대한 애착이 있습니까?’ 그가 ‘제게 인간의 다섯 감각 자극에 대한 애착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면 말해야 하느니라. ‘벗이여, 천상의 감각적 즐거움은 인간의 것보다 더 뛰어나고 훌륭합니다. 존자여, 인간의 감각적 즐거움에서 마음을 돌려 사대왕천 신들에게 마음을 향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So ce evaṁ vadeyya: ‘yā me puttadāresu apekkhā sā pahīnā’ti, so evamassa vacanīyo: ‘atthi panāyasmato mānusakesu pañcasu kāmaguṇesu apekkhā’ti? So ce evaṁ vadeyya: ‘atthi me mānusakesu pañcasu kāmaguṇesu apekkhā’ti, so evamassa vacanīyo: ‘mānusakehi kho, āvuso, kāmehi dibbā kāmā abhikkantatarā ca paṇītatarā ca. Sādhāyasmā, mānusakehi kāmehi cittaṁ vuṭṭhāpetvā cātumahārājikesu devesu cittaṁ adhimocehī’ti.
상윳따 니까야 SN 55.54 병자 경 (Gilānasutta)배경
자녀와 배우자에 대한 애착이 버려졌다는 답 뒤에는 인간의 다섯 감각 자극에 대한 질문이 이어집니다. “다섯”이라는 수량은 그대로 보존되며, 긍정 답변 뒤에는 인간의 감각적 즐거움과 천상의 감각적 즐거움을 비교합니다. 마음의 방향은 곧바로 최종 결론으로 가지 않고 먼저 사대왕천 신들에게 향합니다. 이 대목은 가족 관계에서 즐거움의 영역으로 대상이 바뀌는 첫 전환이며, 이어지는 천상 단계의 출발점입니다. 현대 적용으로 천상 세계를 믿거나 추구하라고 요구하는 대신, 경 안의 점진적 이동 순서를 그대로 읽습니다.
묵상
“인간의 다섯 감각 자극”이라는 말에서 모습·소리·냄새·맛·감촉 가운데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하나가 있나요? 떠오르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것을 나쁘다고 정하거나 천상의 즐거움을 믿을 필요 없이, 가족 관계에서 감각의 즐거움으로 질문 대상이 바뀌는 전환만 살펴볼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