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자눗소니 바라문은 세존께 다가갔다. 다가가 세존께 절하고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자눗소니 바라문이 세존께 여쭈었다. “고따마 존자여, ‘지금 여기에서 볼 수 있는 열반, 지금 여기에서 볼 수 있는 열반’이라고들 합니다. 고따마 존자여, 어떻게 열반이 지금 여기에서 볼 수 있고, 때를 기다리지 않으며, 와서 보라고 할 만하고, 안으로 이끌며, 지혜로운 이가 저마다 직접 알 수 있는 것입니까?”
Atha kho jāṇussoṇi brāhmaṇ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jāṇussoṇi brāhmaṇo bhagavantaṁ etadavoca: “‘sandiṭṭhikaṁ nibbānaṁ sandiṭṭhikaṁ nibbānan’ti, bho gotama, vuccati. Kittāvatā nu kho, bho gotama, sandiṭṭhikaṁ nibbānaṁ hoti akālikaṁ ehipassikaṁ opaneyyikaṁ paccattaṁ veditabbaṁ viññūhī”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55 지금 여기의 열반경 (Nibbutasutta)배경
경의 첫 장면과 자눗소니 바라문의 질문입니다. 다가감·절함·한쪽에 앉음 뒤에 질문이 시작되고, ‘지금 여기에서 볼 수 있는 열반’이라는 말을 인용 안에서 두 번 되풀이한 다음 질문에서 다시 한 번 말합니다. ‘고따마 존자여’도 두 번 나옵니다. 질문은 지금 여기에서 보임·때를 기다리지 않음·와서 보라고 할 만함·안으로 이끎·지혜로운 이가 저마다 직접 앎이라는 다섯 특성을 같은 열반에 연결합니다. 뒤의 답은 먼저 탐욕·성냄·어리석음이 있을 때와 버려졌을 때를 대조하고, 마지막에 이 다섯 특성을 그대로 되받습니다.
묵상
“지금 여기에서 볼 수 있다”부터 “저마다 직접 알 수 있다”까지 다섯 표현 가운데 지금 가장 천천히 읽히는 말이 있나요? 뜻을 당장 확정하거나 특별한 경험을 찾아낼 필요는 없어요. 어느 표현도 또렷하지 않다면, 질문이 먼 훗날이 아니라 지금 확인할 수 있는 기준을 묻는다는 점만 살펴보거나 건너뛰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