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의 영역과 죽음의 두려움을 건너다

네 바른 노력이라는 산문 결론 뒤, 마라의 영역과 군대와 나무찌의 세력을 넘어 태어남과 죽음의 두려움을 건넌 이들을 노래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네 가지 바른 노력이니라. 바른 노력으로 마라의 영역을 이긴 이들, 그들은 매이지 않아 태어남과 죽음의 두려움을 건넜네. 그들은 만족하여 군대를 거느린 마라를 이겼고, 그들은 흔들리지 않네. 나무찌의 모든 세력을 넘어선 그들은 행복하네.”

Imāni kho, bhikkhave, cattāri sammappadhānānīti. Sammappadhānā māradheyyābhibhūtā, Te asitā jātimaraṇabhayassa pāragū; Te tusitā jetvā māraṁ savāhiniṁ te anejā, Sabbaṁ namucibalaṁ upātivattā te sukhitā”ti.

앙굿따라 니까야 AN 4.13 정근 경 (Padhānasutta)

배경

1.7은 “이것이 네 가지 바른 노력”이라고 산문 목록을 닫고, 이어지는 네 줄의 게송은 그 노력의 귀결을 노래합니다. māradheyya는 마라의 영역, savāhinī는 군대를 거느린 마라, namucibala는 나무찌의 모든 세력으로 서로 다른 표현을 지우지 않았습니다. asitā·pāragū·tusitā·aneja·sukhitā는 차례로 매이지 않음·건넘·만족함·흔들리지 않음·행복함으로 이어집니다. 2.2부터 2.4까지 te가 네 번 되풀이되므로 한국어도 ‘그들은’을 네 번 두었고, 태어남과 죽음이라는 둘과 그 두려움도 그대로 살렸습니다. 게송은 다섯째 노력을 보태는 목록이 아니라, 앞의 네 노력이 속박과 두려움을 넘어서는 방향임을 결론으로 보여 줍니다.

묵상

“매이지 않음”, “두려움을 건넘”, “흔들리지 않음” 가운데 지금 비교적 천천히 읽히는 말이 있나요? 두려움을 이겨 냈는지나 행복한지 판단할 필요는 없어요. 마라와 나무찌의 표현이 낯설면, 바른 노력 뒤에 ‘넘어선다’는 방향이 반복된다는 점만 살펴보거나 건너뛰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