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오전에 몸으로 선행하고, 말로 선행하고 마음으로 선행하는 중생들에게는, 수행자들이여, 좋은 오전입니다. 수행자들이여, 한낮에 몸으로 선행하고, 말로 선행하고 마음으로 선행하는 중생들에게는, 수행자들이여, 좋은 한낮입니다. 수행자들이여, 저녁에 몸으로 선행하고, 말로 선행하고 마음으로 선행하는 중생들에게는, 수행자들이여, 좋은 저녁입니다.
“Ye, bhikkhave, sattā pubbaṇhasamayaṁ kāyena sucaritaṁ caranti, vācāya sucaritaṁ caranti, manasā sucaritaṁ caranti, supubbaṇho, bhikkhave, tesaṁ sattānaṁ. Ye, bhikkhave, sattā majjhanhikasamayaṁ kāyena sucaritaṁ caranti, vācāya sucaritaṁ caranti, manasā sucaritaṁ caranti, sumajjhanhiko, bhikkhave, tesaṁ sattānaṁ. Ye, bhikkhave, sattā sāyanhasamayaṁ kāyena sucaritaṁ caranti, vācāya sucaritaṁ caranti, manasā sucaritaṁ caranti, susāyanho, bhikkhave, tesaṁ sattāna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155 오전경 (Pubbaṇhasutta)배경
경의 산문 전체이며 뒤의 세 게송이 무엇을 “좋다”고 노래하는지 먼저 정합니다. 오전·한낮·저녁이라는 세 시간대마다 몸·말·마음의 sucarita, 곧 선행을 같은 순서로 되풀이합니다. 각 문장의 앞과 결론에 bhikkhave가 있으므로 “수행자들이여”도 두 번씩, 모두 여섯 번 보존했습니다. 좋은 때는 달력에서 저절로 오는 성질이 아니라 세 행동 영역에서 선하게 행할 때 그 중생에게 성립한다는 조건 관계입니다. 다음 게송은 이 기준을 별자리·길조·순간·공양의 언어로 넓힙니다.
묵상
오전·한낮·저녁 가운데 지금 몸이나 말이나 마음의 선행 하나를 가장 편안하게 살펴볼 수 있는 때가 있나요? 세 시간대를 모두 잘 보내야 한다고 평가할 필요는 없어요. 떠오르는 선택이 없거나 오늘을 돌아보고 싶지 않다면 이 질문을 건너뛰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