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는 어떤 거처이든 만족하고 그 만족을 칭찬하며, 거처 때문에 그릇되고 부적절한 구함에 빠지지 않느니라. 거처를 얻지 못해도 조바심 내지 않고, 얻어도 얽매이지 않고 홀리지 않고 빠지지 않으며 위험을 보고 벗어남을 알아 사용하느니라. 그 만족으로 자신을 높이거나 남을 깎아내리지 않느니라. 그 일에 능숙하고 게으르지 않으며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수행자를, 수행자들이여, 오래되고 으뜸인 성인의 계보에 선 이라 하느니라.”
Puna caparaṁ, bhikkhave, bhikkhu santuṭṭho hoti itarītarena senāsanena, itarītarasenāsanasantuṭṭhiyā ca vaṇṇavādī, na ca senāsanahetu anesanaṁ appatirūpaṁ āpajjati, aladdhā ca senāsanaṁ na paritassati, laddhā ca senāsanaṁ agadhito amucchito anajjhosanno ādīnavadassāvī nissaraṇapañño paribhuñjati; tāya ca pana itarītarasenāsanasantuṭṭhiyā nevattānukkaṁseti, no paraṁ vambheti. Yo hi tattha dakkho analaso sampajāno patissato, ayaṁ vuccati, bhikkhave, bhikkhu porāṇe aggaññe ariyavaṁse ṭhito.
앙굿따라 니까야 AN 4.28 성인의 계보경 (Ariyavaṁsasutta)배경
셋째 계보는 같은 정형구를 거처에 적용합니다. 옷과 음식에서 이미 세운 기준을 생략하지 않고 모두 되풀이하므로, 만족이 특정 물건에만 적용되는 덕목이 아니라 생활 조건 전체를 관통하는 훈련임을 드러냅니다. 특히 얻은 거처에 갈망하거나 홀리거나 사로잡히지 않으면서도 위험을 보고 벗어남을 알아 사용한다는 말은 만족과 분명한 판단을 함께 둡니다. 자신을 높이거나 남을 낮추지 않는 두 부정도 유지됩니다. 수행의 뜻은 편안함을 거부하는 데 있지 않고, 머무는 조건이 마음의 가치와 타인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굳어지지 않게 하는 데 있습니다.
묵상
머무는 공간이 기대와 다를 때 어떤 조바심이 생기나요? 편안한 곳을 얻은 뒤 그 조건이 당연한 권리나 비교의 기준으로 바뀌는 순간은 없나요? 공간을 바꾸지 않고도 현재 반응 하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