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는 닦음을 즐기고 닦기를 기뻐하며, 버림을 즐기고 버리기를 기뻐하느니라. 그로 자기를 높이거나 남을 낮추지 않느니라. 거기에 능숙하고 부지런하며 분명히 아는 마음챙긴 수행자를, 수행자들이여, 오랜 으뜸의 성인 계보에 섰다 하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이 네 성인의 계보는 처음부터 알려진 오랜 계보의 옛 전통이며, 뒤섞이지 않고 전에도 그러했으며, 지금도 섞이지 않고 앞으로도 그러하며, 현명한 수행자와 바라문에게 비난받지 않느니라.”
Puna caparaṁ, bhikkhave, bhikkhu bhāvanārāmo hoti bhāvanārato, pahānārāmo hoti pahānarato; tāya ca pana bhāvanārāmatāya bhāvanāratiyā pahānārāmatāya pahānaratiyā nevattānukkaṁseti, no paraṁ vambheti. Yo hi tattha dakkho analaso sampajāno patissato, ayaṁ vuccati, bhikkhave, bhikkhu porāṇe aggaññe ariyavaṁse ṭhito. Ime kho, bhikkhave, cattāro ariyavaṁsā aggaññā rattaññā vaṁsaññā porāṇā asaṅkiṇṇā asaṅkiṇṇapubbā, na saṅkīyanti na saṅkīyissanti, appaṭikuṭṭhā samaṇehi brāhmaṇehi viññūhi.
앙굿따라 니까야 AN 4.28 성인의 계보경 (Ariyavaṁsasutta)배경
넷째 계보는 앞의 세 생활 필수품에서 마음의 방향으로 전환합니다. bhāvanā는 닦음, pahāna는 버림이며, 각각 즐김과 기뻐함을 두 번씩 병렬로 둡니다. 그러나 이 수행의 기쁨마저 자신을 높이거나 남을 낮추는 근거로 삼지 않습니다. 이어 앞과 같은 네 자질로 계보에 섰다고 한 뒤, 경의 첫 문장을 다시 불러 네 계보 전체가 오래되고 섞이지 않으며 비난받지 않는 전통임을 확정합니다. 수행의 뜻은 만족을 수동적인 적응에서 끝내지 않고, 유익한 것을 닦고 해로운 것을 버리는 기쁨으로 이어 가면서도 그 수행을 비교의 소유물로 만들지 않는 데 있습니다.
묵상
무언가를 꾸준히 닦거나 놓아 가는 일이 의무가 아니라 기쁨으로 느껴진 때가 있나요? 그 기쁨이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비교로 바뀌는 순간은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지금 그런 기쁨이 없어도 자신을 재촉할 필요는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