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증도 비난도 지혜로운 이를 막지 못하다

싫증을 이기는 지혜로운 이와 누구도 막거나 비난할 수 없는 이를 게송으로 맺습니다.

“싫증은 지혜로운 이를 이기지 못하고, 싫증은 지혜로운 이를 이기지 못하느니라. 오직 지혜로운 이가 싫증을 이기며, 지혜로운 이는 싫증을 이기기 때문이니라. 모든 행위를 버리고 떨쳐 낸 이를 누가 막을 수 있겠느냐. 잠부 강의 금으로 만든 금붙이 같은 그를 누가 헐뜯을 자격이 있겠느냐. 신들도 그를 칭찬하고 브라흐마에게도 칭찬받느니라.”

Nārati sahati dhīraṁ, nārati dhīraṁ sahati; Dhīrova aratiṁ sahati, dhīro hi aratissaho. Sabbakammavihāyīnaṁ, panuṇṇaṁ ko nivāraye; Nekkhaṁ jambonadasseva, ko taṁ ninditumarahati; Devāpi naṁ pasaṁsanti, brahmunāpi pasaṁsito”ti.

앙굿따라 니까야 AN 4.28 성인의 계보경 (Ariyavaṁsasutta)

배경

마지막 게송 블록은 산문의 결론을 두 연으로 압축합니다. 첫 네 줄은 arati와 dhīra의 위치를 바꾸며, 싫증이 지혜로운 이를 이기지 못하고 지혜로운 이가 싫증을 이긴다는 방향을 네 번 고정합니다. 둘째 연은 모든 행위를 버리고 떨쳐 낸 이를 누가 막겠느냐고 묻고, 잠부 강의 금으로 만든 금붙이의 비유 뒤 누가 그를 비난할 자격이 있겠느냐고 다시 묻습니다. 신들과 브라흐마의 칭찬이 경을 닫습니다. 수행의 뜻은 남의 칭찬을 목표로 삼는 데 있지 않고, 싫증과 행위의 속박을 벗어난 삶은 비난으로 흔들 수 없다는 결론을 보는 데 있습니다.

묵상

싫증이 나를 이긴다고 느끼는 순간과, 싫증이 있어도 선택을 이어 가는 순간은 어떻게 다른가요? 칭찬이나 비난이 아니라 내가 버리고 싶은 속박을 기준으로 본다면 지금의 선택은 어떻게 보이나요? 답을 서둘러 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