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여, 허물 없음의 행복은 무엇입니까? 장자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허물없는 몸의 행위를 갖추고, 허물없는 말의 행위를 갖추며, 허물없는 마음의 행위를 갖춥니다. 그는 ‘나는 허물없는 몸의 행위를 갖추고, 허물없는 말의 행위를 갖추며, 허물없는 마음의 행위를 갖췄다’고 하여 행복을 얻고 기쁨을 얻습니다. 장자여, 이를 허물 없음의 행복이라 합니다. 장자여 이 네 행복은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는 재가자가 때와 경우에 따라 얻을 수 있습니다.
Katamañca, gahapati, anavajjasukhaṁ? Idha, gahapati, ariyasāvako anavajjena kāyakammena samannāgato hoti, anavajjena vacīkammena samannāgato hoti, anavajjena manokammena samannāgato hoti. So ‘anavajjenamhi kāyakammena samannāgato, anavajjena vacīkammena samannāgato, anavajjena manokammena samannāgato’ti adhigacchati sukhaṁ, adhigacchati somanassaṁ. Idaṁ vuccati, gahapati, anavajjasukhaṁ. Imāni kho, gahapati, cattāri sukhāni adhigamanīyāni gihinā kāmabhoginā kālena kālaṁ samayena samayaṁ upādāyāti.
앙굿따라 니까야 AN 4.62 재가자의 행복경 (Ānaṇyasutta)배경
넷째 답은 주어를 좋은 집안의 사람(kulaputta)에서 성스러운 제자(ariyasāvaka)로 바꾸고, 허물 없는 몸·말·마음의 행위를 모두 갖춘 상태를 듭니다. 세 행동 영역과 ‘갖춤’은 서술과 자기 확인에 각각 세 번씩 반복되므로 압축하지 않았습니다. 행복과 기쁨, 정의 문장 뒤에는 첫 목록의 조건인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는 재가자와 때·경우라는 한정이 그대로 돌아옵니다. 이 되돌림이 산문 네 문답을 닫고 다음 게송의 비교로 넘깁니다. 수행의 초점은 흠 없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아니라 세 행동 영역을 구체적으로 살피는 데 있습니다.
묵상
몸·말·마음이라는 세 자리 가운데 지금 가볍게 돌아볼 수 있는 한 자리가 있나요? 허물이 전혀 없는지 시험하거나 잘못을 찾아내려는 질문은 아니에요. 한 선택이 편안하게 기억난다면 그 느낌만 살펴보고, 어느 자리도 보고 싶지 않다면 답하지 않고 넘어가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