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없음의 행복을 알고, 또 그 밖의 소유의 행복도 알고, 누림의 행복을 누리는 죽기 마련인 사람은 그로부터 지혜로 분명히 봅니다. 분명히 보는 지혜로운 이는 두 갈래의 누림을 압니다. 이것은 허물 없음의 행복의 열여섯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Ānaṇyasukhaṁ ñatvāna, Atho atthisukhaṁ paraṁ; Bhuñjaṁ bhogasukhaṁ macco, Tato paññā vipassati. Vipassamāno jānāti, ubho bhoge sumedhaso; Anavajjasukhassetaṁ, kalaṁ nāgghati soḷasi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4.62 재가자의 행복경 (Ānaṇyasutta)배경
마지막 두 게송은 앞의 네 산문 정의를 비교합니다. 첫 연은 빚 없음·소유·누림의 세 행복을 차례로 되짚고 지혜로 분명히 봄(vipassati)으로 이어집니다. 둘째 연의 ubho bhoge는 문자대로 두 갈래의 누림이며, etaṁ이 가리키는 범위를 인용에서는 ‘이것’으로 남겼습니다. 주석은 이를 앞의 세 행복을 한 갈래로, 허물 없음의 행복을 다른 갈래로 묶어, 앞의 셋을 합해도 뒤의 것의 열여섯째 몫에 못 미친다는 비교로 풉니다. 이는 주석 층위의 설명입니다. root의 paraṁ을 따랐고 ‘기억한다’는 다른 판본 sare는 번역에 섞지 않았습니다. 지혜는 앞의 행복을 부정하기보다 행위의 허물없음을 비교의 기준으로 알아봅니다.
묵상
‘열여섯째 몫에도 못 미친다’는 비교를 읽을 때, 몸·말·마음 가운데 지금 조용히 살펴볼 수 있는 한 자리가 있나요? 스스로를 무결하다고 판정하거나 잘못을 찾아낼 필요는 없어요. 어느 자리도 보고 싶지 않다면 비교의 방향만 확인하고 멈추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