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세상에는 이 네 부류의 사람이 있느니라. 어떤 넷인가? 수행자들이여, 어떤 사람은 내면의 마음 고요를 얻지만 높은 지혜의 이치 통찰은 얻지 못하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어떤 사람은 높은 지혜의 이치 통찰을 얻지만 내면의 마음 고요는 얻지 못하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어떤 사람은 내면의 마음 고요도 얻지 못하고 높은 지혜의 이치 통찰도 얻지 못하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어떤 사람은 내면의 마음 고요를 얻고 높은 지혜의 이치 통찰도 얻느니라.”
“Cattārome, bhikkhave, puggalā santo saṁvijjamānā lokasmiṁ. Katame cattāro? Idha, bhikkhave, ekacco puggalo lābhī hoti ajjhattaṁ cetosamathassa, na lābhī adhipaññādhammavipassanāya. Idha pana, bhikkhave, ekacco puggalo lābhī hoti adhipaññādhammavipassanāya, na lābhī ajjhattaṁ cetosamathassa. Idha pana, bhikkhave, ekacco puggalo na ceva lābhī hoti ajjhattaṁ cetosamathassa na ca lābhī adhipaññādhammavipassanāya. Idha pana, bhikkhave, ekacco puggalo lābhī ceva hoti ajjhattaṁ cetosamathassa lābhī ca adhipaññādhammavipassanāya.
앙굿따라 니까야 AN 4.94 마음을 한곳에 모으는 경, 세 번째 (Tatiyasamādhisutta)배경
부처님은 수행자들에게 세상에 있는 네 부류를 선언하고 “어떤 넷인가?”라고 직접 물은 뒤 분류를 완성합니다. ajjhattaṁ cetosamatha는 내면의 마음 고요, adhipaññādhammavipassanā는 높은 지혜의 이치 통찰입니다. 하나만 얻은 두 경우, 둘 다 얻지 못한 경우, 둘 다 얻은 경우가 빠짐없이 서로 배타적으로 놓입니다. 원문은 첫 선언과 네 항목에서 “수행자들이여”를 다섯 번 반복하므로 인용도 다섯 번 보존했습니다. 이 분류는 사람을 고정된 유형으로 낙인찍기보다 다음 단락에서 무엇을 누구에게 물을지를 정하는 출발점입니다.
묵상
고요와 통찰 가운데 지금 비교적 익숙한 쪽과 아직 낯선 쪽은 무엇인가요? 네 부류는 고정된 신분이 아니라 현재 갖춘 조건을 살피는 틀로 읽을 수 있어요. 어느 쪽인지 분명하지 않다면 판단을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