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자신이 보고 아는 대로 답하느니라. ‘도반이여, 형성된 것들은 이렇게 보아야 하고, 형성된 것들은 이렇게 살펴야 하며, 형성된 것들은 이렇게 통찰해야 합니다.’ 그 사람은 나중에 내면의 마음 고요를 얻고 높은 지혜의 이치 통찰도 얻느니라.”
Tassa so yathādiṭṭhaṁ yathāviditaṁ byākaroti: ‘evaṁ kho, āvuso, saṅkhārā daṭṭhabbā, evaṁ saṅkhārā sammasitabbā, evaṁ saṅkhārā vipassitabbā’ti. So aparena samayena lābhī ceva hoti ajjhattaṁ cetosamathassa lābhī ca adhipaññādhammavipassanāya.
앙굿따라 니까야 AN 4.94 마음을 한곳에 모으는 경, 세 번째 (Tatiyasamādhisutta)배경
통찰을 얻은 도반은 추측이 아니라 자신이 보고 아는 대로 답합니다. 답변은 앞 카드의 세 질문에 정확히 대응하여 형성된 것들을 보음·살핌·통찰함을 각각 “이렇게”라고 되풀이합니다. Pali의 saṅkhārā와 evaṁ이 각각 세 번이므로 한국어도 대상과 지시어를 세 번 모두 드러냈습니다. 이어 질문한 사람은 나중에 내면의 마음 고요뿐 아니라 높은 지혜의 이치 통찰까지 모두 얻습니다. 질문과 답을 원문 순서로 잇되, 이 카드는 답변과 그 결과라는 하나의 논리 단위를 소유합니다.
묵상
도반의 답을 들을 때 그 사람이 직접 보고 아는 범위와 단순한 추측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들은 말을 곧바로 성취로 단정하지 않고, 세 관점이 실제 경험에서 어떻게 확인되는지 차분히 살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