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높은 지혜의 이치 통찰은 얻었으나 내면의 마음 고요는 얻지 못한 사람은, 수행자들이여, 마음 고요를 얻은 사람에게 다가가 이렇게 물어야 하느니라. ‘도반이여, 마음을 어떻게 자리 잡게 해야 합니까? 마음을 어떻게 가라앉혀야 합니까? 마음을 어떻게 하나로 모아야 합니까? 마음을 어떻게 삼매에 들게 해야 합니까?’”
Tatra, bhikkhave, yvāyaṁ puggalo lābhī adhipaññādhammavipassanāya na lābhī ajjhattaṁ cetosamathassa, tena, bhikkhave, puggalena yvāyaṁ puggalo lābhī ajjhattaṁ cetosamathassa so upasaṅkamitvā evamassa vacanīyo: ‘kathaṁ nu kho, āvuso, cittaṁ saṇṭhapetabbaṁ? Kathaṁ cittaṁ sannisādetabbaṁ? Kathaṁ cittaṁ ekodi kātabbaṁ? Kathaṁ cittaṁ samādahātabba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4.94 마음을 한곳에 모으는 경, 세 번째 (Tatiyasamādhisutta)배경
둘째 부류는 내면의 마음 고요를 얻은 사람에게 다가가 부족한 조건을 구체적으로 묻습니다. 네 질문은 모두 cittaṁ을 되풀이하며, saṇṭhapetabbaṁ은 자리 잡게 함, sannisādetabbaṁ은 가라앉힘, ekodi kātabbaṁ은 하나로 모음, samādahātabbaṁ은 삼매에 들게 함입니다. 서로 가까운 표현이지만 원문이 네 동작으로 나누므로 하나의 “집중”으로 합치지 않았습니다. “수행자들이여” 두 번과 “도반이여” 한 번도 화자와 청자를 따라 보존했습니다. 답변은 다음 카드에 완전한 네 항목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마음의 고요를 묻는다면 자리 잡음·가라앉음·하나로 모음·삼매 가운데 어느 표현이 가장 낯선가요? 네 말이 같은 경험을 단순 반복한다고 미리 정하지 않고, 믿을 만한 안내와 자신의 상태를 함께 살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