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자신이 보고 아는 대로 답하느니라. ‘도반이여, 마음은 이렇게 자리 잡게 해야 하고, 마음은 이렇게 가라앉혀야 하며, 마음은 이렇게 하나로 모아야 하고, 마음은 이렇게 삼매에 들게 해야 합니다.’ 그 사람은 나중에 높은 지혜의 이치 통찰을 얻고 내면의 마음 고요도 얻느니라.”
Tassa so yathādiṭṭhaṁ yathāviditaṁ byākaroti: ‘evaṁ kho, āvuso, cittaṁ saṇṭhapetabbaṁ, evaṁ cittaṁ sannisādetabbaṁ, evaṁ cittaṁ ekodi kātabbaṁ, evaṁ cittaṁ samādahātabban’ti. So aparena samaye lābhī ceva hoti adhipaññādhammavipassanāya lābhī ca ajjhattaṁ cetosamathassa.
앙굿따라 니까야 AN 4.94 마음을 한곳에 모으는 경, 세 번째 (Tatiyasamādhisutta)배경
마음 고요를 얻은 도반은 자신이 보고 아는 대로 네 질문에 답합니다. 원문은 cittaṁ과 evaṁ을 각 네 번 되풀이하며, 자리 잡게 함·가라앉힘·하나로 모음·삼매에 들게 함을 질문과 같은 순서로 답합니다. 인용도 “마음은 이렇게”를 네 번 모두 써서 어느 단계도 앞말에 기대어 생략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질문한 사람은 나중에 높은 지혜의 이치 통찰과 내면의 마음 고요를 모두 얻습니다. 앞 부류와 달리 결과에서 통찰이 먼저 나오지만, 원문의 순서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묵상
네 답변을 하나의 모호한 “집중법”으로 듣지 않고 각각의 차이를 살핀다면 무엇이 새롭게 보이나요? 특정 방법을 억지로 밀어붙이기보다 마음이 불안하거나 부담스러울 때는 속도를 늦추고 적절한 도움을 구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