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자신이 보고 아는 대로 답하느니라. ‘도반이여, 마음은 이렇게 자리 잡게 해야 하고, 마음은 이렇게 가라앉혀야 하며, 마음은 이렇게 하나로 모아야 하고, 마음은 이렇게 삼매에 들게 해야 하며, 형성된 것들은 이렇게 보아야 하고, 형성된 것들은 이렇게 살펴야 하며, 형성된 것들은 이렇게 통찰해야 합니다.’ 그 사람은 나중에 내면의 마음 고요를 얻고 높은 지혜의 이치 통찰도 얻느니라.”
Tassa so yathādiṭṭhaṁ yathāviditaṁ byākaroti: ‘evaṁ kho, āvuso, cittaṁ saṇṭhapetabbaṁ, evaṁ cittaṁ sannisādetabbaṁ, evaṁ cittaṁ ekodi kātabbaṁ, evaṁ cittaṁ samādahātabbaṁ, evaṁ saṅkhārā daṭṭhabbā, evaṁ saṅkhārā sammasitabbā, evaṁ saṅkhārā vipassitabbā’ti. So aparena samayena lābhī ceva hoti ajjhattaṁ cetosamathassa lābhī ca adhipaññādhammavipassanāya.
앙굿따라 니까야 AN 4.94 마음을 한곳에 모으는 경, 세 번째 (Tatiyasamādhisutta)배경
두 덕을 얻은 도반은 자신이 보고 아는 대로 일곱 질문에 답합니다. 답변은 앞 카드와 같은 순서로 마음의 네 동작과 형성된 것들의 세 동작을 모두 반복합니다. Pali의 evaṁ은 일곱 번, cittaṁ은 네 번, saṅkhārā는 세 번이며 한국어도 “이렇게” 일곱 번, “마음은” 네 번, “형성된 것들은” 세 번을 드러냈습니다. 그 사람은 나중에 내면의 마음 고요와 높은 지혜의 이치 통찰을 모두 얻습니다. 질문 목록과 답변 목록의 일대일 대응 및 마지막 결과를 한 단위로 완전하게 보존했습니다.
묵상
일곱 답변을 읽을 때 마음의 네 동작과 형성된 것들의 세 동작이 어떻게 다른 흐름을 이루나요? 목록이 길게 느껴진다면 일부를 지우기보다 두 묶음으로 나누어 읽어도 괜찮고, 이해되지 않는 항목은 질문으로 남겨 두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