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내면의 마음 고요를 얻고 높은 지혜의 이치 통찰도 얻은 사람은, 수행자들이여, 그 이로운 것들에 굳게 서서 번뇌를 없애기 위해 더 힘써야 하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세상에는 이 네 부류의 사람이 있느니라.”
Tatra, bhikkhave, yvāyaṁ puggalo lābhī ceva hoti ajjhattaṁ cetosamathassa lābhī ca adhipaññādhammavipassanāya, tena, bhikkhave, puggalena tesu ceva kusalesu dhammesu patiṭṭhāya uttari āsavānaṁ khayāya yogo karaṇīyo. Ime kho, bhikkhave, cattāro puggalā santo saṁvijjamānā lokasmi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4.94 마음을 한곳에 모으는 경, 세 번째 (Tatiyasamādhisutta)배경
넷째 부류는 이미 두 덕을 얻었으므로 다른 사람에게 가서 묻는 정형구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그 이로운 것들에 굳게 서서 더 나아가 āsava, 곧 번뇌의 소멸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yogo karaṇīyo는 앞 세 부류의 질문과 답을 자기 노력으로 바꾸어 읽게 하는 일반 명령이 아니라, 둘을 얻은 이에게만 주어진 결론입니다. 마지막 문장은 세상에 이 네 부류가 있음을 다시 확인합니다. 원문의 “수행자들이여” 세 번과 조건·근거·목적을 모두 보존했습니다.
묵상
고요와 통찰을 어느 정도 함께 경험했다고 느낄 때 그것을 완성으로 단정하지 않고, 더 남은 번뇌를 살피는 태도는 어떤 모습일까요? 성취를 과장하거나 자신을 몰아붙이기보다 이로운 바탕과 현재의 한계를 함께 인정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