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따마 존자여, 저는 이런 주장과 견해를 지녔습니다. ‘죽기 마련이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공포에 빠지지 않는 이는 없습니다.’” “바라문이여, 죽기 마련이면서 죽음을 두려워하고 공포에 빠지는 이도 있느니라. 바라문이여, 죽기 마련이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공포에 빠지지 않는 이도 있느니라.”
“Ahañhi, bho gotama, evaṁvādī evaṁdiṭṭhi: ‘natthi yo maraṇadhammo samāno na bhāyati, na santāsaṁ āpajjati maraṇassā’”ti. “Atthi, brāhmaṇa, maraṇadhammo samāno bhāyati, santāsaṁ āpajjati maraṇassa; atthi pana, brāhmaṇa, maraṇadhammo samāno na bhāyati, na santāsaṁ āpajjati maraṇassa.
앙굿따라 니까야 AN 4.184 두려움 없음경 (Abhayasutta)배경
도입 직후 자눗소니의 주장과 세존의 첫 답이 한 문답을 이룹니다. natthi 안의 두 부정 na bhāyati와 na santāsaṁ āpajjati는 “두려워하지 않고 공포에 빠지지 않는 이는 없다”라는 보편 주장입니다. 세존은 atthi를 두 번 두어 죽기 마련인 이 가운데 두려워하는 경우와 두려워하지 않는 경우가 모두 있다고 구별합니다. bho gotama 한 번과 brāhmaṇa 두 번에 맞춰 호격도 각각 한 번과 두 번 보존했습니다. 이 구별이 뒤의 네 가지 두려움과 네 가지 두려움 없음의 대칭 전개를 엽니다.
묵상
“모두 그렇다”는 주장에 곧바로 두 경우가 모두 있다고 답하는 구조는 어떻게 들리나요? 자신의 죽음에 대한 반응을 판정하거나 어느 부류에 넣을 필요는 없어요. 지금 살펴볼 수 있다면, 하나의 보편 문장을 두 가능성으로 다시 나누는 말의 차이만 천천히 보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