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문이여, 누가 죽기 마련이며 죽음을 두려워하고 공포에 빠집니까? 바라문이여, 감각적 욕망의 탐욕을 여의지 못하고 욕구·애착·갈증·열기·갈애도 남아 있습니다. 중한 병고가 그에게 닥칩니다. 그 중한 병고에 시달려 그는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감각적 욕망이 나를 떠나고, 나도 그것들을 떠나겠구나.’ 그는 슬퍼하고 지치며 비탄하고, 가슴을 치며 울부짖고 혼미에 빠집니다. 바라문이여, 이 사람은 죽기 마련이며 죽음을 두려워하고 공포에 빠집니다.
Katamo ca, brāhmaṇa, maraṇadhammo samāno bhāyati, santāsaṁ āpajjati maraṇassa? Idha, brāhmaṇa, ekacco kāmesu avītarāgo hoti avigatacchando avigatapemo avigatapipāso avigatapariḷāho avigatataṇho. Tamenaṁ aññataro gāḷho rogātaṅko phusati. Tassa aññatarena gāḷhena rogātaṅkena phuṭṭhassa evaṁ hoti: ‘piyā vata maṁ kāmā jahissanti, piye cāhaṁ kāme jahissāmī’ti. So socati kilamati paridevati, urattāḷiṁ kandati, sammohaṁ āpajjati. Ayaṁ kho, brāhmaṇa, maraṇadhammo samāno bhāyati, santāsaṁ āpajjati maraṇassa.
앙굿따라 니까야 AN 4.184 두려움 없음경 (Abhayasutta)배경
세존이 밝히는 네 가지 두려움 가운데 첫째이며, 질문부터 첫 부류의 결론까지를 소유합니다. 감각적 쾌락에 대해 탐욕·욕구·애착·갈증·열기·갈애라는 여섯 표현이 모두 아직 사라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중한 병고는 닥침과 그 병고에 시달림으로 두 번 나타나고, 생각 안에서는 감각적 쾌락이 자신을 떠남과 자신이 그것을 떠남이 양방향으로 놓입니다. 뒤의 슬픔·지침·비탄·가슴을 치며 울부짖음·혼미라는 다섯 반응 뒤 두려움과 공포가 결론을 이룹니다. 경은 죽기 마련이라는 사실만이 아니라 여의지 못한 대상과의 이별을 첫 조건으로 특정합니다.
묵상
“그것들이 나를 떠나고, 나도 그것들을 떠난다”라는 두 방향 가운데 지금 더 선명하게 들리는 쪽이 있나요? 자신의 애착이나 두려움을 없애야 한다고 요구할 필요는 없어요. 병과 죽음의 대목이 버겁다면 여섯 표현의 배열만 보거나, 잠시 건너뛰고 편안한 때 다시 읽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