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바라문이여, 어떤 이는 참된 가르침을 의심하고 의혹하며 확신하지 못합니다. 어떤 중한 병고가 그에게 닥칩니다. 그 중한 병고에 시달리며 그는 생각합니다. ‘나는 참된 가르침을 의심하고 의혹하며 확신하지 못하는구나.’ 그는 슬퍼하고 지치며 비탄하고, 가슴을 치며 울부짖고 혼미에 빠집니다. 바라문이여, 이 사람도 죽기 마련이면서 죽음을 두려워하고 공포에 빠집니다. 바라문이여, 이 네 사람은 죽기 마련이면서 죽음을 두려워하고 공포에 빠집니다.
Puna caparaṁ, brāhmaṇa, idhekacco kaṅkhī hoti vicikicchī aniṭṭhaṅgato saddhamme. Tamenaṁ aññataro gāḷho rogātaṅko phusati. Tassa aññatarena gāḷhena rogātaṅkena phuṭṭhassa evaṁ hoti: ‘kaṅkhī vatamhi vicikicchī aniṭṭhaṅgato saddhamme’ti. So socati kilamati paridevati, urattāḷiṁ kandati, sammohaṁ āpajjati. Ayampi kho, brāhmaṇa, maraṇadhammo samāno bhāyati, santāsaṁ āpajjati maraṇassa. Ime kho, brāhmaṇa, cattāro maraṇadhammā samānā bhāyanti, santāsaṁ āpajjanti maraṇassa.
앙굿따라 니까야 AN 4.184 두려움 없음경 (Abhayasutta)배경
네 번째 두려움과 네 사람의 전체 소결을 함께 담습니다. kaṅkhī·vicikicchī·aniṭṭhaṅgato saddhamme는 참된 가르침을 의심함·의혹함·확신하지 못함의 세 표현이며, 사람의 상태와 병고 속 생각에서 두 번 반복됩니다. 중한 병고의 두 언급과 다섯 반응도 앞의 정형을 그대로 따릅니다. 개별 결론 뒤 Ime kho와 cattāro가 네 명을 묶으므로 “이 네 죽기 마련인 이들”이라는 수량을 보존했습니다. 첫 네 부류는 감각적 쾌락, 몸, 행위의 회고, 참된 가르침에 대한 불확실성이라는 서로 다른 조건으로 완결됩니다.
묵상
네 번째 조건이 대상에 대한 애착이나 지난 행위와 달리 “참된 가르침에 대한 세 겹의 불확실성”인 점은 어떻게 보이나요? 믿음의 정도를 채점하거나 의심을 억누를 필요는 없어요. 지금은 세 표현이 두 번 반복되고 마지막에 네 사람이 함께 묶인다는 구조만 확인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