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바라문이여, 어떤 이는 몸에 대한 탐욕을 여의었고, 욕구·애착·갈증·열기·갈애가 사라졌습니다. 어떤 중한 병고가 그에게 닥칩니다. 그 중한 병고에 시달리며 그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이 몸이 나를 떠나고, 나도 이 몸을 떠나겠구나.’ 그는 슬퍼하지 않고 지치지 않으며 비탄하지 않고, 가슴을 치며 울부짖지 않고 혼미에 빠지지 않습니다. 바라문이여, 이 죽기 마련인 이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공포에 빠지지 않습니다.
Puna caparaṁ, brāhmaṇa, idhekacco kāye vītarāgo hoti vigatacchando vigatapemo vigatapipāso vigatapariḷāho vigatataṇho. Tamenaṁ aññataro gāḷho rogātaṅko phusati. Tassa aññatarena gāḷhena rogātaṅkena phuṭṭhassa na evaṁ hoti: ‘piyo vata maṁ kāyo jahissati, piyañcāhaṁ kāyaṁ jahissāmī’ti. So na socati na kilamati na paridevati, na urattāḷiṁ kandati, na sammohaṁ āpajjati. Ayampi kho, brāhmaṇa, maraṇadhammo samāno na bhāyati, na santāsaṁ āpajjati maraṇassa.
앙굿따라 니까야 AN 4.184 두려움 없음경 (Abhayasutta)배경
두려움 없음의 두 번째 부류이며, 첫 부류의 대상인 감각적 쾌락이 몸으로 바뀝니다. 몸에 대한 탐욕을 여읨과 욕구·애착·갈증·열기·갈애가 사라짐이라는 여섯 항목은 앞의 두려운 두 번째 부류와 정반대입니다. 중한 병고의 두 언급은 그대로이고, 몸과 서로 떠난다는 생각에는 “생각하지 않는다”가 걸립니다. 다섯 반응과 두려움·공포도 모두 각각 부정되며, Ayampi의 “이 사람도”가 첫 부류에 이어 붙습니다. 수행적으로 이 대칭은 몸의 병이 없어진다는 약속이 아니라 몸을 향한 갈망과 뒤따르는 반응의 차이를 보여 줍니다.
묵상
몸에 대한 갈망이 사라졌다는 조건과 중한 병고가 여전히 닥친다는 문장을 함께 놓으면 어떤 구별이 보이나요? 몸의 변화 앞에서 평온해야 한다고 자신을 몰아붙일 필요는 없어요. 지금 불편하다면 질병의 유무가 아니라 반응의 부정이 달라진다는 점만 보고 멈추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