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거래로 청렴함을 알아야 하되, 오래 뒤라야지 잠깐은 안 되고, 주의해야지 부주의해서는 안 되며, 지혜로워야지 지혜 없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왜입니까? 수행자들이여, 어떤 이는 다른 이와 거래하며 압니다. ‘이 존자는 한 사람과는 한 방식, 두 사람과는 다른 방식, 세 사람과는 또 다른 방식, 여럿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거래한다. 앞의 거래에서 뒤의 거래로 벗어난다. 그의 거래는 청렴하지 않으며 청렴한 것이 아니다.’
‘Saṁvohārena, bhikkhave, soceyyaṁ veditabbaṁ, tañca kho dīghena addhunā, na ittaraṁ; manasikarotā, no amanasikarotā; paññavatā, no duppaññenā’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Kiñcetaṁ paṭicca vuttaṁ? Idha, bhikkhave, puggalo puggalena saddhiṁ saṁvoharamāno evaṁ jānāti: ‘aññathā kho ayamāyasmā ekena eko voharati, aññathā dvīhi, aññathā tīhi, aññathā sambahulehi; vokkamati ayamāyasmā purimavohārā pacchimavohāraṁ; aparisuddhavohāro ayamāyasmā, nāyamāyasmā parisuddhavohāro’ti.
앙굿따라 니까야 AN 4.192 알 수 있는 경우 경 (Ṭhānasutta)배경
둘째 명제를 되받아 청렴하지 않은 거래를 구체화합니다. 사람 수는 한 명·두 명·세 명·여럿의 네 단계이며, 그때마다 방식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이어 앞의 거래에서 뒤의 거래로 벗어난다는 시간적 불일치를 짚고, 거래가 청렴하지 않으며 청렴한 것이 아니라는 대칭 부정으로 닫습니다. 단순히 상황에 맞게 말투를 조절하는 일을 비난하는 문장이 아니라, 상대와 때에 따라 거래의 기준이 달라지는 것을 오랜 관찰로 알아보는 대목입니다. 수행상 청렴은 선언보다 여러 상대를 대할 때 유지되는 기준으로 드러납니다.
묵상
한 명·두 명·세 명·여럿이라는 순서를 읽을 때, 상대에 따라 달라지는 내 말이나 약속이 떠오르나요? 모든 차이를 잘못으로 판단하기보다, 지켜야 할 기준까지 달라졌던 경우와 자연스러운 조절을 구분할 수 있나요? 지금 살피기 어렵다면 이 구분을 보류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