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여, 다섯 가지 두려움과 원한을 버리면
‘계를 지키는 이’라고 불리고 좋은 곳에 태어나느니라.
어떤 다섯인가?
살생, 주지 않은 것을 가짐, 삿된 음행, 거짓말,
술과 발효주 등 취하게 하여 게으름의 원인이 되는 것이니라.
장자여, 이 다섯 가지 두려움과 원한을 버리면
‘계를 지키는 이’라고 불리고 좋은 곳에 태어나느니라.”
Pañca, gahapati, bhayāni verāni pahāya ‘sīlavā’ iti vuccati, sugatiñca upapajjati. Katamāni pañca? Pāṇātipātaṁ, adinnādānaṁ, kāmesumicchācāraṁ, musāvādaṁ, surāmerayamajjapamādaṭṭhānaṁ—imāni kho, gahapati, pañca bhayāni verāni pahāya ‘sīlavā’ iti vuccati, sugatiñca upapajjati.
앙굿따라 니까야 AN 5.174 원한경 (Verasutta) 배경
버리지 않은 조건과 지옥을 말한 앞 대목을 긍정 방향으로 정확히 뒤집습니다. pahāya는 다섯을 버린 조건이고, sīlavā는 ‘계를 지키는 이’, sugati는 ‘좋은 곳’을 가리킵니다. 질문 뒤에는 앞과 같은 다섯 행위가 같은 순서로 다시 나오며, 끝에서도 거사 호격과 다섯이라는 수량, 버림·계행·좋은 곳의 결론을 반복합니다. 따라서 별도의 여섯째 항목이 생기거나 목록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수행의 뜻은 계를 추상적인 신분으로 보는 대신, 구체적인 다섯 행위를 버리는 선택과 그 선택이 가리키는 삶의 방향으로 이해하는 데 있습니다.
묵상
‘다섯 가지 두려움과 원한을 버리면’이라는 긍정 조건에서 어떤 가능성이 보이나요? 이미 완전하게 지켜야만 의미가 생기는 것은 아니에요. 지금 한 항목에서 원한을 덜 만드는 쪽으로 기울 수 있는 작은 선택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나요? 없어도 괜찮아요.
사리뿟따여, 흰옷 입은 재가자가
다섯 가지 학습계목에 따라 행위를 단속하고,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무는
네 가지 높은 마음의 경지를
원하는 대로 어려움 없이 힘들이지 않고 얻는다면,
그는 원한다면 스스로 이렇게 선언할 수 있느니라.
‘나는 지옥을 다했고,
축생의 모태를 다했고,
아귀의 영역을 다했고,
나쁜 곳과 험한 곳과 파멸처를 다했으니,
나는 흐름에 든 자로서 파멸처에 떨어지지 않고
반드시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자이니라.’
Yaṁ kañci, sāriputta, jāneyyātha gihiṁ odātavasanaṁ pañcasu sikkhāpadesu saṁvutakammantaṁ catunnaṁ ābhicetasikānaṁ diṭṭhadhammasukhavihārānaṁ nikāmalābhiṁ akicchalābhiṁ akasiralābhiṁ, so ākaṅkhamāno attanāva attānaṁ byākareyya: 'khīṇanirayomhi khīṇatiracchānayoni khīṇapettivisayo khīṇāpāyaduggativinipāto, sotāpannohamasmi avinipātadhammo niyato sambodhiparāyaṇo'ti.
앙굿따라 니까야 AN 5.179 재가자 경 (Gihisutta) 배경
오계는 화려한 수행이 아닙니다. 명상의 신비로움도, 경전의 깊이도 없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다섯 가지 학습계목에 따라 행위를 단속하고,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무는 네 가지 높은 마음의 경지를 원하는 대로 얻는 재가자는 스스로 '나는 흐름에 든 자'라고 선언할 수 있느니라." 오계가 재가자를 성자의 첫 단계까지 데려가는 출발점이라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이 화려한 수행에 끌리지만, 일상에서 오계를 지키는 것이 가장 기본이자 가장 어렵습니다. 하루 한 시간 명상하면서 나머지 스물세 시간을 거짓말하고 남을 해치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묵상
명상보다 먼저, 일상의 도덕을 점검해 보세요. 오계 중 가장 자주 어기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 하나를 일주일간 의식적으로 지켜보세요. 마음의 기초가 다져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