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손실과 여덟 조건을 묻고 답함

까닭을 묻고 친족·재산·건강의 손실 뒤 성찰하지 않는 첫 사례로 답합니다.

왜입니까? 수행자들이여, 어떤 이는 친족의 손실이나 재산의 손실이나 건강의 손실을 겪고도 이렇게 성찰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삶은 이와 같고, 이 개별적 삶을 얻음도 이와 같다. 세상의 삶이 이와 같고 개별적 삶을 얻음이 이와 같기에, 여덟 세상 조건은 세상을 따라 돌고 세상도 여덟 세상 조건을 따라 돈다. 곧 이익과 손실, 명성과 불명예, 비난과 칭찬, 행복과 괴로움이다.’

Kiñcetaṁ paṭicca vuttaṁ? Idha, bhikkhave, ekacco ñātibyasanena vā phuṭṭho samāno, bhogabyasanena vā phuṭṭho samāno, rogabyasanena vā phuṭṭho samāno na iti paṭisañcikkhati: ‘tathābhūto kho ayaṁ lokasannivāso tathābhūto ayaṁ attabhāvapaṭilābho yathābhūte lokasannivāse yathābhūte attabhāvapaṭilābhe aṭṭha lokadhammā lokaṁ anuparivattanti loko ca aṭṭha lokadhamme anuparivattati—lābho ca, alābho ca, yaso ca, ayaso ca, nindā ca, pasaṁsā ca, sukhañca, dukkhañcā’ti.

앙굿따라 니까야 AN 4.192 알 수 있는 경우 경 (Ṭhānasutta)

배경

셋째 명제의 까닭을 묻는 질문과 첫 답의 전반을 붙여 놓았습니다. 친족·재산·건강의 손실 세 가지를 겪은 사람이 성찰하지 않는다고 한 뒤, 성찰해야 할 내용을 콜론 뒤에 끝까지 붙였습니다. 세상의 삶과 개별적 삶을 얻음이라는 두 조건이 원인절에서도 반복되고, 이익·손실, 명성·불명예, 비난·칭찬, 행복·괴로움의 네 쌍이 고정 순서로 나옵니다. 손실의 아픔을 축소하는 목록이 아니라, 변화하는 세계에서 여덟 조건과 세상이 서로 따라 돈다는 관점을 보지 못한 사례입니다. 다음 카드는 그때 이어지는 다섯 반응을 밝힙니다.

묵상

“왜입니까?”라는 질문 뒤 세 손실과 네 쌍의 세상 조건이 답으로 이어지는 점은 어떻게 들리나요? 경험을 설명하거나 받아들였는지 평가할 필요는 없어요. 목록에서 한 쌍만 조용히 알아볼 수 있나요, 아니면 이 대목은 잠시 건너뛰는 편이 더 안전하게 느껴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