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그러나 다른 어떤 이는 친족의 손실이나 재산의 손실이나 건강의 손실을 겪고 이렇게 성찰합니다. ‘세상의 삶은 이와 같고, 이 개별적 삶을 얻음도 이와 같다. 세상의 삶이 이와 같고 개별적 삶을 얻음이 이와 같기에, 여덟 세상 조건은 세상을 따라 돌고 세상도 여덟 세상 조건을 따라 돈다. 곧 이익과 손실, 명성과 불명예, 비난과 칭찬, 행복과 괴로움이다.’
Idha pana, bhikkhave, ekacco ñātibyasanena vā phuṭṭho samāno bhogabyasanena vā phuṭṭho samāno rogabyasanena vā phuṭṭho samāno iti paṭisañcikkhati: ‘tathābhūto kho ayaṁ lokasannivāso tathābhūto ayaṁ attabhāvapaṭilābho yathābhūte lokasannivāse yathābhūte attabhāvapaṭilābhe aṭṭha lokadhammā lokaṁ anuparivattanti loko ca aṭṭha lokadhamme anuparivattati—lābho ca, alābho ca, yaso ca, ayaso ca, nindā ca, pasaṁsā ca, sukhañca, dukkhañcā’ti.
앙굿따라 니까야 AN 4.192 알 수 있는 경우 경 (Ṭhānasutta)배경
첫 사례와 정확히 대칭되는 둘째 사례의 전반입니다. ‘그러나 다른 어떤 이는’이라는 전환 뒤 친족·재산·건강의 손실 세 가지가 다시 나오며, 이번에는 성찰한다고 합니다. 콜론 뒤에는 세상의 삶과 개별적 삶을 얻음의 두 조건, 여덟 조건과 세상의 상호 회전, 이익부터 괴로움까지 네 쌍이 앞 카드와 같은 문구와 순서로 반복됩니다. 달라진 것은 손실이 아니라 성찰의 유무입니다. 다음 카드가 다섯 반응의 부정과 셋째 결론을 함께 제시하여 이 대칭을 닫습니다.
묵상
같은 세 손실 앞에서 ‘성찰한다’는 한 차이가 놓인 점은 어떻게 들리나요? 슬퍼하지 않아야 한다고 자신을 몰아세우기보다, 지금 경험이 여덟 조건 가운데 어디에 놓이는지만 가볍게 알아볼 수 있나요? 살피는 일조차 버겁다면 답하지 않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