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같이 수행자들이여, 다른 사람과 대화하며 이렇게 압니다. ‘이 존자의 문제 접근, 이끄는 방향, 질문 제시를 보면 이 존자는 지혜 없고 지혜로운 이가 아니다.’ 무슨 까닭입니까? 이 존자는 깊고 뜻이 있으며, 고요하고 뛰어나고, 추론의 영역을 넘고 미묘하며 지혜로운 이가 알아들을 말을 꺼내지 않습니다.
Evamevaṁ kho, bhikkhave, puggalo puggalena saddhiṁ sākacchāyamāno evaṁ jānāti: ‘yathā kho imassa āyasmato ummaggo yathā ca abhinīhāro yathā ca pañhāsamudāhāro, duppañño ayamāyasmā, nāyamāyasmā paññavā. Taṁ kissa hetu? Tathā hi ayamāyasmā na ceva gambhīraṁ atthapadaṁ udāharati santaṁ paṇītaṁ atakkāvacaraṁ nipuṇaṁ paṇḍitavedanīyaṁ.
앙굿따라 니까야 AN 4.192 알 수 있는 경우 경 (Ṭhānasutta)배경
작은 물고기 비유를 대화에 적용하는 전환부터 첫 답까지 붙였습니다. ‘그와 같이’ 뒤 대화하는 사람은 문제 접근·이끄는 방향·질문 제시의 세 기준을 보고 지혜 없고 지혜롭지 않다고 판단합니다. 이어 ‘무슨 까닭인가’라는 질문과 깊은 말의 일곱 성격을 꺼내지 못한다는 첫 답이 함께 나옵니다. 공식 영어 보조 번역은 이 반복을 줄였지만 root는 모두 기록하므로 한국어도 보존했습니다. 다음 카드는 두 번째 답인 설명 능력의 부정과 최종 판정을 함께 닫습니다. 수행상 비유의 세 움직임은 대화의 구체적 세 기준으로 되돌아옵니다.
묵상
같은 기준이 비유 뒤에 다시 온전히 반복되는 점은 어떻게 들리나요? 한 번의 인상보다 문제 접근·말의 깊이·설명 능력을 차례로 확인하는 것이 판단을 늦추는 데 도움이 될까요? 누구를 평가하고 싶지 않다면 세 기준의 순서만 기억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