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모였는지, 얽매임에서 풀려났는지 알다

삼매에 든 마음과 들지 않은 마음, 해탈한 마음과 해탈하지 않은 마음을 알고 영역과 실현 역량의 후렴으로 닫습니다.

“삼매에 든 마음을 삼매에 든 마음이라고 알고,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을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이라고 알며, 해탈한 마음을 해탈한 마음이라고 알고, 해탈하지 않은 마음을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알기를.’ 그때그때 실현할 역량에 이르며,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 그러하느니라.”

samāhitaṁ vā cittaṁ samāhitaṁ cittanti pajāneyyaṁ, asamāhitaṁ vā cittaṁ asamāhitaṁ cittanti pajāneyyaṁ, vimuttaṁ vā cittaṁ vimuttaṁ cittanti pajāneyyaṁ, avimuttaṁ vā cittaṁ avimuttaṁ cittanti pajāneyyan’ti,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ṁ pāpuṇāti sati sati āyatane.

앙굿따라 니까야 AN 5.23 마음의 오염경 (Upakkilesasutta)

배경

마음 상태의 마지막 두 쌍은 삼매와 해탈의 긍정·부정입니다. samāhita와 asamāhita, vimutta와 avimutta의 접두 대칭을 그대로 살려 삼매에 들지 않음과 해탈하지 않음을 조용히 지우지 않았습니다. 각 상태와 앎의 내용이 같은 말로 네 번 반복된 뒤 안쪽 인용이 닫힙니다. 이어 그때그때 실현할 역량과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라는 후렴이 붙어, 앞 세 대목까지 이어진 열여섯 상태 전체를 하나의 직접 앎으로 마칩니다. 여기서 부정 상태를 아는 일도 목록의 절반이며, 특정 상태를 성취하라고 요구하는 문장은 아닙니다.

묵상

삼매에 듦과 들지 않음, 해탈함과 해탈하지 않음이 나란히 이름 붙여진 점은 어떻게 읽히나요? 지금의 상태를 판정하거나 부족함을 찾을 필요는 없어요. 긍정과 부정을 모두 알아야 목록이 닫힌다는 점만 살펴봐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