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행위와 좋은 곳의 태어남을 대칭으로 보다

몸·말·마음의 좋은 행위와 바른 견해가 좋은 곳으로 이어지는 대칭, 전체 관찰과 실현 역량의 후렴을 맺습니다.

“‘그러나 이 존재들은 몸·말·마음으로 훌륭하게 행하고, 성스러운 이들을 비방하지 않으며, 바른 견해를 지니고 그 견해에 따른 행위를 받아들였기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인 하늘 세계에 태어났다고 알기를. 이처럼 천상의 눈으로 죽고 태어나는 존재들을 낮음과 높음, 아름다움과 추함, 좋은 곳과 나쁜 곳에서 보고 행위에 따라 가는 것을 알기를.’ 그때그때 실현할 역량에 이르며,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 그러하느니라.”

ime vā pana bhonto sattā kāyasucaritena samannāgatā vacīsucaritena samannāgatā manosucaritena samannāgatā ariyānaṁ anupavādakā sammādiṭṭhikā sammādiṭṭhikammasamādānā, te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nnāti, iti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eyyaṁ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eyyan’ti,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ṁ pāpuṇāti sati sati āyatane.

앙굿따라 니까야 AN 5.23 마음의 오염경 (Upakkilesasutta)

배경

앞 대목의 나쁜 행위와 결과에 ime vā pana, “그러나 이 존재들은”이라는 대칭이 이어집니다. 몸·말·마음의 훌륭한 행위, 성스러운 이를 비방하지 않음, 바른 견해, 그 견해에 따른 행위가 원인으로 놓이고 좋은 곳인 하늘 세계의 태어남이 결과로 놓입니다. 이어 처음의 세 대조와 행위에 따른 감을 온전히 반복하여 천상의 눈의 범위를 닫습니다. 한쪽 결과만 남기지 않고 나쁨과 좋음의 원인·결과를 같은 형식으로 보아야 대칭이 완성됩니다. 마지막 후렴은 이 관찰 또한 그때그때 실현할 역량과 그 영역의 제한 아래 놓인 다섯 번째 항목임을 밝힙니다.

묵상

나쁜 행위의 대목과 좋은 행위의 대목이 원인과 결과를 같은 순서로 놓는 점이 보이나요? 타인의 삶을 좋고 나쁨으로 재단할 필요는 없어요. 비방·견해·행위가 긍정과 부정으로 정확히 대칭되는지만 살펴봐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