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원한다면, ‘번뇌의 소멸로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을 바로 이 삶에서 스스로 직접 알아 실현하고 들어 머물기를.’ 그때그때 실현할 역량에 이르며,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 그러하느니라.”
So sace ākaṅkhati: ‘āsavānaṁ khayā anāsavaṁ cetovimuttiṁ paññāvimuttiṁ diṭṭheva dhamme sayaṁ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eyyan’ti,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ṁ pāpuṇāti sati sati āyatane”ti.
앙굿따라 니까야 AN 5.23 마음의 오염경 (Upakkilesasutta)배경
여섯 직접 앎의 마지막은 āsavānaṁ khayā, 번뇌의 소멸로 시작합니다. 실현되는 것은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이라는 두 해탈이며, diṭṭheva dhamme는 그것을 바로 이 삶에서 실현한다고 시간 범위를 고정합니다. sayaṁ abhiññā는 스스로 직접 아는 것,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eyya는 직접 실현한 뒤 들어 머무는 것을 뜻합니다. 앞의 다섯 능력과 마찬가지로 원함의 조건으로 열리고 그때그때 실현할 역량과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라는 후렴으로 닫힙니다. 이 결말은 금의 작업 가능성에서 출발한 비유를 번뇌 소멸이라는 경의 최종 목적까지 이끕니다.
묵상
“바로 이 삶에서”와 “스스로 직접 알아”라는 두 표현 가운데 어느 말이 더 오래 머무나요? 번뇌의 소멸이나 해탈을 이루었는지 확인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경이 마지막 항목을 두 해탈과 직접 실현으로 닫는 방식만 바라봐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