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길들이는 이들에게 보시함

자신을 길들이고 고요하게 하며 완전히 식히는 사문·바라문에게 결실 있는 보시를 세우는 다섯째 쓰임입니다.

또한 장자여, 도취와 방일을 멀리하고 인내와 온화함에 자리 잡아 자신을 길들이고, 자신을 고요하게 하며, 자신을 완전히 식히는 수행자·바라문들이 있습니다. 성스러운 제자는 힘써 일하여 얻고, 팔의 힘으로 모으며, 땀 흘려 번, 정당하고 바르게 얻은 재물로 그러한 수행자·바라문에게 위로 향하고 하늘에 속하며 행복한 결실을 맺고 하늘로 이끄는 보시를 세웁니다. 이것이 재물의 다섯째 쓰임입니다. 장자여, 이것들이 재물의 다섯 쓰임입니다.

Puna caparaṁ, gahapati, ariyasāvako uṭṭhānavīriyādhigatehi bhogehi bāhābalaparicitehi sedāvakkhittehi dhammikehi dhammaladdhehi ye te samaṇabrāhmaṇā madappamādā paṭiviratā khantisoracce niviṭṭhā ekamattānaṁ damenti ekamattānaṁ samenti ekamattānaṁ parinibbāpenti, tathārūpesu samaṇabrāhmaṇesu uddhaggikaṁ dakkhiṇaṁ patiṭṭhāpeti sovaggikaṁ sukhavipākaṁ saggasaṁvattanikaṁ. Ayaṁ pañcamo bhogānaṁ ādiyo. Ime kho, gahapati, pañca bhogānaṁ ādiyā.

앙굿따라 니까야 AN 5.41 아다야경 (Ādiyasutta)

배경

다섯째 답과 전체 목록의 결론입니다. 보시의 대상은 도취와 방일을 멀리함, 인내와 온화함에 자리 잡음, 자신을 길들임·고요하게 함·완전히 식힘으로 설명됩니다. 마지막 세 동사는 모두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하므로 한국어도 대상을 세 번 되풀이했습니다. 그들에게 세우는 보시는 위로 향함, 하늘에 속함, 행복한 결실, 하늘로 이끎이라는 네 성격을 모두 지닙니다. 끝의 ‘이것들이 다섯 쓰임’은 앞 다섯 답을 닫습니다. 수행의 뜻은 정당한 재물이 절제와 고요를 닦는 이들을 돕는 결실로도 이어질 수 있음을 보는 데 있습니다.

묵상

‘자신을 길들이고, 고요하게 하며, 완전히 식힌다’는 세 동작 가운데 지금 말뜻만 살펴볼 수 있는 하나가 있나요? 누가 보시받을 자격이 있는지 판정하거나 나눔을 약속할 필요는 없어요. 멀게 느껴지면 세 표현의 차이만 읽거나 질문을 건너뛰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