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수행자도 세존께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도 죽음의 상념을 닦고 있습니다.” “수행자여, 그대는 죽음의 상념을 어떻게 닦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 내가 하루를 살아서 세존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참으로 많이 이루리라.’ 세존이시여, 이렇게 저는 죽음의 상념을 닦습니다.”
Aññataropi kho bhikkhu bhagavantaṁ etadavoca: “ahampi kho,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Yathā kathaṁ pana tvaṁ, bhikkhu, bhāvesi maraṇassatin”ti? “Idha mayhaṁ, bhante, evaṁ hoti: ‘aho vatāhaṁ divasaṁ jīveyyaṁ,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Evaṁ kho ahaṁ,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6.19 첫 번째 죽음의 상념경 (Paṭhamamaraṇassatisutta)배경
두 번째 수행자의 문답으로, 첫 답과 같은 구조를 온전히 되풀이하면서 기간만 하루 밤낮에서 하루로 줄어듭니다. ahampi의 ‘저도’가 앞 수행자의 답을 이어받고, 세존은 다시 어떤 방식으로 닦는지 묻습니다. 이 수행자 역시 살아 있는 동안 세존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여 많이 이루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같은 호격·질문·답의 반복은 여섯 사람의 차이가 수행 여부가 아니라 죽음을 얼마나 가까운 시간으로 헤아리는가에 있음을 보여 줍니다. 뒤의 평가가 나오기 전까지 하루라는 기준도 비교 목록의 둘째 항목으로 남습니다.
묵상
하루 밤낮에서 “하루”로 기간이 줄어드는 차이가 마음에 선명하게 느껴지나요? 오늘을 마지막처럼 살아야 한다고 몰아붙일 필요는 없어요. 두 표현의 차이를 가볍게 비교하거나, 시간에 관한 생각이 부담스럽다면 호격과 문답의 반복만 보고 지나가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