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들숨과 날숨을 기준으로 닦다

여섯 번째 비구가 들이쉰 뒤 내쉬거나 내쉰 뒤 들이쉬는 동안을 기준으로 죽음의 상념을 설명합니다.

또 다른 수행자도 세존께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도 죽음의 상념을 닦고 있습니다.” “수행자여, 그대는 죽음의 상념을 어떻게 닦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 내가 들이쉰 뒤 내쉬거나 내쉰 뒤 들이쉬는 동안 살아 세존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참으로 많이 이루리라.’ 세존이시여, 이렇게 저는 죽음의 상념을 닦습니다.”

Aññataropi kho bhikkhu bhagavantaṁ etadavoca: “ahampi kho,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Yathā kathaṁ pana tvaṁ, bhikkhu, bhāvesi maraṇassatin”ti? “Idha mayhaṁ, bhante, evaṁ hoti: ‘aho vatāhaṁ tadantaraṁ jīveyyaṁ yadantaraṁ assasitvā vā passasāmi passasitvā vā assasāmi,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Evaṁ kho ahaṁ,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6.19 첫 번째 죽음의 상념경 (Paṭhamamaraṇassatisutta)

배경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수행자는 음식의 단위에서 한 호흡의 전환으로 옮깁니다. assasitvā vā passasāmi는 들이쉰 뒤 내쉬는 경우이고, passasitvā vā assasāmi는 내쉰 뒤 들이쉬는 경우입니다. 두 방향과 두 vā, 곧 ‘거나’를 모두 남겨 어느 한쪽 호흡만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 수행자도 살아 있는 동안 세존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이겠다는 같은 목적을 말합니다. 여섯 답의 기간은 하루 밤낮에서 한 호흡까지 차례로 좁아졌고, 다음 대목에서 세존은 이 순서를 두 무리로 나누어 평가합니다.

묵상

들이쉰 뒤 내쉬는 것과 내쉰 뒤 들이쉬는 것이 모두 적힌 점을 천천히 읽어 볼 수 있나요? 호흡을 길게 만들거나 통제할 필요는 없어요. 지금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한 번의 전환만 느껴 보거나, 호흡에 주의를 두는 일이 불편하다면 곧바로 멈춰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