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말하자 세존께서 그 수행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수행자들이여, 어떤 수행자는 죽음의 상념을 이렇게 닦느니라. ‘아, 내가 하루 밤낮을 살아서 세존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참으로 많이 이루리라.’ 수행자들이여, 어떤 수행자는 죽음의 상념을 이렇게 닦느니라. ‘아, 내가 하루를 살아서 세존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참으로 많이 이루리라.’”
Evaṁ vutte, bhagavā te bhikkhū etadavoca: “yo cāyaṁ, bhikkhave, bhikkhu evaṁ maraṇassatiṁ bhāveti: ‘aho vatāhaṁ rattindivaṁ jīveyyaṁ,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Yo cāyaṁ, bhikkhave, bhikkhu evaṁ maraṇassatiṁ bhāveti: ‘aho vatāhaṁ divasaṁ jīveyyaṁ,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앙굿따라 니까야 AN 6.19 첫 번째 죽음의 상념경 (Paṭhamamaraṇassatisutta)배경
여섯 수행자의 답이 끝난 뒤 세존께서 직접 평가를 시작하는 첫 부분입니다. 먼저 하루 밤낮과 하루를 기준으로 한 두 답을 각각 “어떤 수행자는 이렇게 닦습니다”라는 문장과 함께 온전히 되풀이합니다. 각 기간과 세존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인다는 목적을 다시 말하는 반복은 뒤의 평가가 무엇을 근거로 삼는지 차례로 세웁니다. 아직 방일이라는 결론은 나오지 않으므로 두 예와 평가를 섞지 않았습니다. 수행의 의미는 자신의 답을 세존의 재진술 속에서 다시 듣게 하여, 곧 이어질 분류의 근거를 분명히 하는 데 있습니다.
묵상
세존께서 하루 밤낮과 하루의 답을 그대로 다시 말씀하시는 반복은 어떻게 느껴지나요? 같은 생각을 되풀이하거나 삶의 시간을 계산할 필요는 없어요. 두 기간이 나란히 놓인 순서만 확인하거나, 죽음에 관한 반복이 벅차다면 잠시 쉬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