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어떤 수행자는 죽음의 상념을 이렇게 닦느니라. ‘아, 내가 탁발 음식 한 끼를 먹는 동안 살아 세존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참으로 많이 이루리라.’ 수행자들이여, 어떤 수행자는 죽음의 상념을 이렇게 닦느니라. ‘아, 내가 네댓 입을 씹어 삼키는 동안 살아 세존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참으로 많이 이루리라.’ 수행자들이여, 이 수행자들은 방일해 머물고 번뇌의 소멸을 위해 죽음의 상념을 느슨하게 닦는다고 하느니라.”
Yo cāyaṁ, bhikkhave, bhikkhu evaṁ maraṇassatiṁ bhāveti: ‘aho vatāhaṁ tadantaraṁ jīveyyaṁ yadantaraṁ ekapiṇḍapātaṁ bhuñjāmi,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Yo cāyaṁ, bhikkhave, bhikkhu evaṁ maraṇassatiṁ bhāveti: ‘aho vatāhaṁ tadantaraṁ jīveyyaṁ yadantaraṁ cattāro pañca ālope saṅkhāditvā ajjhoharāmi,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Ime vuccanti, bhikkhave, bhikkhū pamattā viharanti dandhaṁ maraṇassatiṁ bhāventi āsavānaṁ khayāya.
앙굿따라 니까야 AN 6.19 첫 번째 죽음의 상념경 (Paṭhamamaraṇassatisutta)배경
세존께서 세 번째와 네 번째 답을 되풀이하고 첫 무리의 판정을 내리는 대목입니다. 탁발 한 끼와 네댓 입의 기간, 세존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이려는 목적을 각각 다시 말한 뒤, 앞의 네 답을 함께 묶습니다. pamattā는 방일함, dandhaṁ은 느슨하거나 더딤을 뜻하며, 무엇을 위해 느슨한지도 āsavānaṁ khayāya, 곧 번뇌의 소멸을 위해서라고 명시됩니다. 선한 의도가 없다는 비난이 아니라 죽음의 상념이 아직 긴 간격에 머문다는 판정입니다. 수행적으로 이 대목은 ‘하루보다 짧다’는 상대 비교만으로 충분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방일하며 머물고 느슨하게 닦는다”는 판정을 읽을 때 자신을 비난하는 마음이 생기나요? 이 말로 현재의 수행이나 삶을 채점할 필요는 없어요. 경이 네 가지 기간을 한 무리로 묶는 구조만 살피고, 말이 거칠게 느껴지면 이 대목을 건너뛰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