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어떤 수행자는 죽음의 상념을 이렇게 닦느니라. ‘아, 내가 들이쉰 뒤 내쉬거나 내쉰 뒤 들이쉬는 동안 살아 세존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참으로 많이 이루리라.’ 수행자들이여, 이 수행자들은 방일하지 않고 머물며 번뇌의 소멸을 위해 죽음의 상념을 예리하게 닦는다고 하느니라.”
Yo cāyaṁ, bhikkhave, bhikkhu evaṁ maraṇassatiṁ bhāveti: ‘aho vatāhaṁ tadantaraṁ jīveyyaṁ yadantaraṁ assasitvā vā passasāmi passasitvā vā assasāmi,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Ime vuccanti, bhikkhave, bhikkhū appamattā viharanti tikkhaṁ maraṇassatiṁ bhāventi āsavānaṁ khayāya.
앙굿따라 니까야 AN 6.19 첫 번째 죽음의 상념경 (Paṭhamamaraṇassatisutta)배경
세존께서 여섯째 답을 온전히 되풀이한 뒤 둘째 무리의 판정을 내립니다. 들이쉰 뒤 내쉬거나 내쉰 뒤 들이쉬는 두 방향을 다시 말하고, 한 입의 답과 함께 ime, 곧 ‘이 수행자들’이라고 묶습니다. appamattā는 방일하지 않음으로 앞의 pamattā와, tikkhaṁ은 예리함으로 앞의 dandhaṁ과 정확히 대조됩니다. 두 무리 모두 목적은 번뇌의 소멸이지만, 죽음의 상념을 어느 간격으로 되살리는가가 판정을 가릅니다. 수행의 초점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강도가 아니라 기억을 지금의 가장 짧은 행위에 놓는 데 있습니다.
묵상
“방일하지 않음”과 “예리하게 닦음”이라는 두 표현 가운데 어느 말이 더 강하게 들리나요? 스스로를 부지런하거나 느슨하다고 판정할 필요는 없어요. 한 입과 한 호흡이 함께 묶인 이유만 살펴보거나, 압박처럼 느껴지면 잠시 멈춰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