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사카여, 어떻게 여인이 믿음을 갖춥니까? 여기서 위사카여, 여인은 여래의 깨달음을 믿습니다. ‘세존께서는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분, 명지와 실천을 갖추신 분, 잘 가신 분, 세상을 아시는 분, 길들여야 할 사람을 이끄는 위없는 분, 신과 인간의 스승, 깨달으신 분, 세존이시다.’ 위사카여, 이렇게 여인이 믿음을 갖춥니다.”
Kathañca, visākhe, mātugāmo saddhāsampanno hoti? Idha, visākhe, mātugāmo saddho hoti, saddahati tathāgatassa bodhiṁ: ‘itipi so bhagavā arahaṁ sammāsambuddho vijjācaraṇasampanno sugato lokavidū anuttaro purisadammasārathi satthā devamanussānaṁ buddho bhagavā’ti. Evaṁ kho, visākhe, mātugāmo saddhāsampanno hoti.
앙굿따라 니까야 AN 8.49 위사카경 (Paṭhamaidhalokikasutta)배경
다음 삶의 네 조건 가운데 첫째인 믿음을 묻고 답합니다. saddahati tathāgatassa bodhiṁ은 믿음의 대상을 막연한 행운이 아니라 여래의 깨달음으로 한정합니다. 이어 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명지와 실천을 갖추신 분·잘 가신 분·세상을 아시는 분·길들여야 할 사람을 이끄는 위없는 분·신과 인간의 스승·깨달으신 분·세존이라는 아홉 호칭을 정형구 그대로 보존합니다. 질문과 결론도 같은 ‘믿음을 갖춤’으로 맞물립니다. 수행의 뜻은 각 호칭이 깨달음에 대한 믿음을 어떤 성품과 역할로 구체화하는지 살피는 데 있으며, 모든 표현에 같은 정도의 확신을 느껴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묵상
아홉 호칭 가운데 지금 믿음보다 호기심을 일으키는 표현이 있나요? 전부를 확신해야 한다고 자신에게 요구할 필요는 없어요. 한 표현이 낯설거나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그 거리감을 알아차릴 수 있고, 아무것도 고르지 않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