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나는 무한 공간의 영역이라는 선정에 기대어 번뇌의 소멸을 말한다’고 했느니라. 무엇을 두고 그렇게 말했는가? 수행자들이여, 수행자가 물질 인식을 완전히 넘고 저항 인식이 사라지며 다양성 인식에 주의하지 않아, ‘공간은 무한하다’며 무한 공간의 영역에 들어 머무느니라. 그곳의 느낌·인식·형성·의식에 속한 것들을 무상·괴로움·병·종기·화살·재앙·질환·타자·부서짐·공·무아로 보느니라.”
‘Ākāsānañcāyatanampāhaṁ, bhikkhave, jhānaṁ nissāya āsavānaṁ khayaṁ vadāmī’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Kiñcetaṁ paṭicca vuttaṁ? Idha, bhikkhave, bhikkhu sabbaso rūpasaññānaṁ samatikkamā paṭighasaññānaṁ atthaṅgamā nānattasaññānaṁ amanasikārā ‘ananto ākāso’ti ākāsānañcāyatanaṁ upasampajja viharati. So yadeva tattha hoti vedanāgataṁ saññāgataṁ saṅkhāragataṁ viññāṇagataṁ, te dhamme aniccato dukkhato rogato gaṇḍato sallato aghato ābādhato parato palokato suññato anattato samanupassati.
앙굿따라 니까야 AN 9.36 선정경 (Jhānasutta)배경
무색의 첫 성취인 무한 공간의 영역도 선언과 질문, 답의 구조로 자세히 설명됩니다. 수행자는 모든 물질 지각을 넘어가고 저항 지각이 사라지며 다양성 지각에 주의하지 않습니다. 이어 “공간은 무한하다”고 알아 무한 공간의 영역에 들어 머뭅니다. 물질에 속한 것은 목록에서 빠지지만 느낌·지각·형성·의식의 네 경험 갈래는 남습니다. 수행자는 이 네 갈래를 첫 선정과 같은 열한 관점으로 봅니다. 물질을 넘어선 미세한 성취도 영원하거나 자아인 곳이 아니라, 여전히 무상·괴로움·공·무아로 꿰뚫어 볼 경험이라는 점을 밝힙니다.
묵상
물질 지각을 넘어 무한한 공간을 경험하면 더 이상 살필 것이 없다고 느껴질까요? 그곳에도 느낌·지각·형성·의식이 남는다는 구분을 읽으며, 미세함과 해탈을 같게 보고 있지는 않은지 함께 살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