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굳게 서서 번뇌의 소멸에 이릅니다. 이르지 못하더라도 그 수행을 사랑하고 기뻐한 힘으로 다섯 낮은 족쇄가 다해 그곳에 저절로 태어나 완전한 열반에 들며, 그 세계에서 돌아오지 않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없음의 영역에 기대어 번뇌의 소멸을 말한다’고 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So tattha ṭhito āsavānaṁ khayaṁ pāpuṇāti. No ce āsavānaṁ khayaṁ pāpuṇāti, teneva dhammarāgena tāya dhammanandiyā pañcannaṁ orambhāgiyānaṁ saṁyojanānaṁ parikkhayā opapātiko hoti tattha parinibbāyī anāvattidhammo tasmā lokā. ‘Ākiñcaññāyatanampāhaṁ, nissāya āsavānaṁ khayaṁ vadāmī’ti, iti yaṁ taṁ vuttaṁ, idametaṁ paṭicca vuttaṁ.
앙굿따라 니까야 AN 9.36 선정경 (Jhānasutta)배경
아무것도 없음의 영역을 반복 설명한 마지막은 두 결실입니다. 불사의 요소로 마음을 향한 자가 그곳에 굳게 서면 번뇌의 소멸에 이릅니다. 아직 소멸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그 수행을 사랑하고 기뻐한 힘을 조건으로 다섯 낮은 족쇄가 다하면 저절로 태어난 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고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어 처음의 선언을 다시 인용하여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라고 확정합니다. 따라서 아무것도 없음의 영역에 기대어 번뇌의 소멸을 말한다는 표현은 그 영역에 드는 한 순간만이 아니라 관찰·돌이킴·불사를 향함·두 결실의 전체 과정을 뜻합니다.
묵상
첫 결실과 둘째 결실을 함께 제시한 데서 어떤 여지가 느껴지나요? 당장 완전한 소멸에 이르지 못한 경우까지 말하면서도 다섯 낮은 족쇄의 소멸을 놓치지 않은 점을 차분히 살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