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 있는 성취의 한계와 마지막 두 영역을 구별하다

지각 있는 성취에서는 완전한 앎을 관통할 수 있고, 마지막 두 영역은 들어갔다 나온 숙련자가 설명해야 한다고 결론짓습니다.

“수행자들이여, 인식이 있는 성취가 미치는 데까지 완전한 앎의 관통이 미치느니라. 그리고 수행자들이여, 이 두 영역, 곧 비상비비상의 영역 성취와 인식과 느낌의 소멸에 관해서는, 수행자들이여, 성취에 능숙하고 성취에서 나옴에 능숙한 명상자들이 들어갔다 나온 뒤 올바르게 설명해야 한다고 나는 말하느니라.”

Iti kho, bhikkhave, yāvatā saññāsamāpatti tāvatā aññāpaṭivedho. Yāni ca kho imāni, bhikkhave, nissāya dve āyatanāni—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samāpatti ca saññāvedayitanirodho ca, jhāyīhete, bhikkhave, samāpattikusalehi samāpattivuṭṭhānakusalehi samāpajjitvā vuṭṭhahitvā sammā akkhātabbānīti vadāmī”ti.

앙굿따라 니까야 AN 9.36 선정경 (Jhānasutta)

배경

결론은 상세 설명이 아무것도 없음의 영역에서 멈춘 까닭을 구별합니다. saññāsamāpatti, 지각이 있는 성취가 미치는 데까지는 aññāpaṭivedha, 완전한 앎의 관통이 미칩니다. 그러나 비상비비상의 영역 성취와 지각과 느낌의 소멸이라는 마지막 두 영역은 같은 방식으로 그 안에서 관찰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세존은 성취에 드는 일과 그 성취에서 나오는 일에 능숙한 명상자가 실제로 들어갔다 나온 뒤 올바르게 설명해야 한다고 밝힙니다. 지각이 극도로 미세하거나 지각과 느낌이 멎은 성취를 개념만으로 단정하지 않고, 성취와 출정의 숙련에 근거해 말하도록 한 경계입니다.

묵상

마지막 두 영역을 앞의 성취와 같은 방식으로 설명하지 않은 신중함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직접 들어갔다 나온 숙련을 요구한 말에서 경험과 추측의 경계를 다시 천천히 차분히 살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