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마음 경

앙굿따라 니까야 AN 1.51-52

두 짧은 경이 빛나는 마음을 알지 못하는 범부에게는 마음 닦음이 없고, 아는 성스러운 제자에게는 마음 닦음이 있음을 한 쌍으로 밝힌다.

인용된 가르침 2구절

이 경을 2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배우지 못한 사람은 빛나는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1구절

배우지 못한 범부가 오염된 빛나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마음을 닦는 일이 없다고 밝힙니다.

“수행자들이여, 이 마음은 밝게 빛나지만 찾아온 오염들에 의해 더럽혀지느니라. 배우지 못한 범부는 이것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배우지 못한 범부에게는 마음을 닦는 일이 없다’고 말하느니라.”

“Pabhassaramidaṁ, bhikkhave, cittaṁ. Tañca kho āgantukehi upakkilesehi upakkiliṭṭhaṁ. Taṁ assutavā puthujjano yathābhūtaṁ nappajānāti. Tasmā ‘assutavato puthujjanassa cittabhāvanā natthī’ti vadāmī”ti.

앙굿따라 니까야 AN 1.51-52 빛나는 마음 경

배경

이 경은 AN 1.49의 짧은 선언에 두 문장을 더해, 모름과 마음 닦음의 부재를 인과로 잇습니다. 먼저 마음은 밝게 빛나지만 찾아온 오염들에 의해 더럽혀집니다. 이어 배우지 못한 범부는 그것을 yathābhūtaṁ,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합니다. 마지막의 tasmā, ‘그러므로’가 그 모름을 ‘마음을 닦는 일이 없다’는 결론에 연결합니다. 이 부정은 마음이 본질적으로 닦일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배우지 못한 범부에게 실제 마음 닦음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부처님의 판정입니다. 둘째 경은 배운 성스러운 제자의 앎과 긍정 결론을 대조합니다.

묵상

밝음과 오염을 함께 있는 그대로 안다는 말은 좋은 상태만 골라 보라는 요구가 아닙니다. 지금 마음을 살필 수 있다면 맑음과 흐림 가운데 어느 한쪽만 과장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판단하기 어렵거나 쉬고 싶다면 이 질문은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2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빛나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안다 1구절

배운 성스러운 제자가 오염에서 벗어난 빛나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므로 마음을 닦는 일이 있다고 밝힙니다.

“수행자들이여, 이 마음은 밝게 빛나며 찾아온 오염들에서 벗어나 있느니라.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이것을 있는 그대로 아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배운 성스러운 제자에게는 마음을 닦는 일이 있다’고 말하느니라.”

“Pabhassaramidaṁ, bhikkhave, cittaṁ. Tañca kho āgantukehi upakkilesehi vippamuttaṁ. Taṁ sutavā ariyasāvako yathābhūtaṁ pajānāti. Tasmā ‘sutavato ariyasāvakassa cittabhāvanā atthī’ti vadāmī”ti.

앙굿따라 니까야 AN 1.51-52 빛나는 마음 경

배경

둘째 경은 첫째 경의 네 문장을 항목마다 반대로 놓습니다. 더럽혀짐은 벗어남으로, 배우지 못함은 배움으로, 범부는 성스러운 제자로, 알지 못함은 앎으로, 마음 닦음의 부재는 있음으로 바뀝니다. 마지막의 tasmā는 여기서도 있는 그대로 아는 일과 마음을 닦는 일이 있다는 결론을 잇습니다. 따라서 벗어남만 따로 떼어 저절로 생기는 상태로 읽지 않습니다. 배움과 정확한 앎이 마음 닦음의 성립과 함께 놓인다는 인과가 이 짝의 수행 결론입니다.

묵상

‘마음을 닦는 일이 있다’는 결론 앞에는 배움과 있는 그대로 앎이 놓입니다. 마음을 바꾸려 서두르기 전에 지금 실제로 어떤지 배우고 확인할 여지를 두고 있나요? 아직 분명하지 않다면 무엇을 더 알아보고 싶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