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이 마음은 밝게 빛나지만 찾아온 오염들에 의해 더럽혀지느니라. 배우지 못한 범부는 이것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배우지 못한 범부에게는 마음을 닦는 일이 없다’고 말하느니라.”
“Pabhassaramidaṁ, bhikkhave, cittaṁ. Tañca kho āgantukehi upakkilesehi upakkiliṭṭhaṁ. Taṁ assutavā puthujjano yathābhūtaṁ nappajānāti. Tasmā ‘assutavato puthujjanassa cittabhāvanā natthī’ti vadāmī”ti.
배경
이 경은 AN 1.49의 짧은 선언에 두 문장을 더해, 모름과 마음 닦음의 부재를 인과로 잇습니다. 먼저 마음은 밝게 빛나지만 찾아온 오염들에 의해 더럽혀집니다. 이어 배우지 못한 범부는 그것을 yathābhūtaṁ,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합니다. 마지막의 tasmā, ‘그러므로’가 그 모름을 ‘마음을 닦는 일이 없다’는 결론에 연결합니다. 이 부정은 마음이 본질적으로 닦일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배우지 못한 범부에게 실제 마음 닦음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부처님의 판정입니다. 둘째 경은 배운 성스러운 제자의 앎과 긍정 결론을 대조합니다.
묵상
밝음과 오염을 함께 있는 그대로 안다는 말은 좋은 상태만 골라 보라는 요구가 아닙니다. 지금 마음을 살필 수 있다면 맑음과 흐림 가운데 어느 한쪽만 과장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판단하기 어렵거나 쉬고 싶다면 이 질문은 건너뛰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