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라 왁가(어리석은 이)

Vijjābhāgiyasutta

앙굿따라 니까야 AN 2.31

고요(사마타)와 통찰(위빠사나) 두 가지가 각각 탐욕과 무명을 없앤다고 짝지어 설명한다.

인용된 가르침 3구절

이 경을 2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집중과 통찰 - 사마타와 위빠사나의 관계 2구절

고요한 마음과 꿰뚫어 보는 지혜, 명상의 두 날개

수행자들이여, 두 가지가 밝은 앎에 도움이 된다. 어떤 두 가지인가? 고요와 통찰이다. 고요를 닦으면 마음이 수행되고, 마음이 수행되면 탐냄이 버려진다. 통찰을 닦으면 지혜가 수행되고, 지혜가 수행되면 모름이 버려진다.

Dve me, bhikkhave, dhammā vijjābhāgiyā. Katame dve? Samatho ca vipassanā ca. Samatho, bhikkhave, bhāvito kamatthamanubhoti? Cittaṁ bhāvīyati. Cittaṁ bhāvitaṁ kamatthamanubhoti? Yo rāgo so pahīyati. Vipassanā, bhikkhave, bhāvitā kamatthamanubhoti? Paññā bhāvīyati. Paññā bhāvitā kamatthamanubhoti? Yā avijjā sā pahīyati.

앙굿따라 니까야 AN 2.31 발라 왁가 (어리석은 이)

배경

불교 명상의 두 축은 고요(사마타)와 통찰(위빠사나)입니다. 부처님은 둘을 명확히 구분하시면서 동시에 연결하십니다. 사마타는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어 탐냄을 다스리고, 위빠사나는 지혜를 키워 모름을 다스립니다. 현대 명상에서는 둘이 흔히 따로 가르쳐집니다. ‘마음챙김 명상’은 위빠사나에 가깝고 ‘집중 명상’은 사마타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에게 둘은 분리할 수 없는 한 쌍입니다. 고요 없이 통찰할 수 없고, 통찰 없이 고요가 깊어질 수 없습니다.

묵상

명상(혹은 일상의 집중)은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 있나요? 고요하지만 통찰이 없나요(편안하게 앉아 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관찰하지만 고요하지 않나요(생각이 많은데 분석만 하는)? 둘의 균형을 잡아보면 어떨까요?

수행자들이여, 탐냄으로 더러워진 마음은 풀려나지 못하고, 모름으로 더러워진 지혜는 닦이지 않는다. 이와 같이 탐냄이 빛바래어 마음이 풀려남이 있고, 모름이 빛바래어 지혜가 풀려남이 있다.

Rāgupakkiliṭṭhaṁ vā, bhikkhave, cittaṁ na vimuccati, avijjupakkiliṭṭhā vā paññā na bhāvīyati. Iti kho, bhikkhave, rāgavirāgā cetovimutti, avijjāvirāgā paññāvimuttīti.

앙굿따라 니까야 AN 2.31 발라 왁가 (어리석은 이)

배경

고요와 통찰의 이야기가 목적지로 마무리됩니다. 부처님은 같은 경의 끝에서 두 가지 더러움과 두 가지 풀려남을 짝지으십니다. “탐냄으로 더러워진 마음은 풀려나지 못하고, 모름으로 더러워진 지혜는 닦이지 않는다.”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탐냄이 빛바래면 마음의 풀려남이 오고, 모름이 빛바래면 지혜의 풀려남이 옵니다. 사마타가 다스리는 것과 위빠사나가 다스리는 것이 서로 다른 풀려남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어느 한쪽만 닦으면 두 더러움 가운데 하나가 그대로 남습니다. 명상이 두 축을 함께 익히는 일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묵상

명상을 ‘스트레스 해소’보다 더 깊은 것으로 볼 수 있을까요? 부처님에게 명상은 진리를 직접 보는 길이었어요. 고요해진 마음으로 그대로 있지 않음과 나라고 할 것이 없음, 조건 따라 일어나는 것을 직접 지켜보는 일이었지요. 오늘 5분, 숨 하나만 지켜보며 ‘이 호흡도 변한다’는 것을 느껴 볼까요?

2 자애에서 지혜로 - 따뜻한 마음이 꿰뚫어 봄으로 1구절

자애를 닦은 마음이 그 자애마저 지어진 것임을 보는 자리로 나아간다

수행자들이여, 두 가지가 밝은 앎에 도움이 된다. 어떤 두 가지인가? 고요(사마타)와 통찰(위빳사나)이다. 고요를 닦으면 마음이 수행되고, 마음이 수행되면 탐냄이 버려진다. 통찰을 닦으면 지혜가 수행되고, 지혜가 수행되면 모름이 버려진다.

Dveme bhikkhave dhammā vijjābhāgiyā. Katame dve? Samatho ca vipassanā ca.

앙굿따라 니까야 AN 2.31 발라 왁가 (어리석은 이)

배경

고요(사마타)가 마음을 닦고 탐냄을 다스리는 것이라면, 통찰(위빳사나)이 지혜를 키우고 모름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마타는 자비와 밀접합니다. 자애(멧따) 명상은 마음을 고요하게 합니다. 따뜻한 마음이 집중의 기반이 됩니다. 위빳사나는 지혜와 밀접합니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통찰입니다. 따라서 자비(사마타)와 지혜(위빳사나)는 수행의 두 축이며, 하나만으로는 완전한 깨달음에 이를 수 없습니다.

묵상

수행(혹은 삶)은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 있나요? 따뜻하지만 현실을 정확히 보지 못하나요(자비만)? 정확히 보지만 차갑고 냉소적인가요(지혜만)? 새가 한쪽 날개로 날 수 없듯, 둘의 균형을 찾아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