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애에서 지혜로 - 따뜻한 마음이 꿰뚫어 봄으로

자애를 닦은 마음이 그 자애마저 지어진 것임을 보는 자리로 나아간다

“어머니가 하나뿐인 아이를 목숨을 걸고 지키듯,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향해 끝없는 마음을 길러야 한다.”

Mātā yathā niyaṁ puttam Āyusā ekaputtamanurakkhe; Evampi sabbabhūtesu, Mānasaṁ bhāvaye aparimāṇaṁ.

숫따니빠따 Snp 1.8 자비경 (Mettasutta) 149

배경

이 비유는 한 아이를 향한 깊은 마음을 모든 생명에게로 넓혀 갑니다. 첫 두 행의 ‘하나뿐인 아이’와 뒤 두 행의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맞물립니다. 하나에서 모두로 대상은 넓어지지만, 지키려는 마음의 깊이는 이어집니다. 앞에서는 남의 괴로움을 바라지 말라고 했고, 뒤에서는 이 마음을 위와 아래와 사방으로 펼치라고 합니다. 이 비유는 그 두 가르침을 잇습니다. 그저 남을 괴롭히지 않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다른 생명이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기르는 쪽으로 나아갑니다.

묵상

어머니와 아이의 비유에서 어떤 낱말이 가장 오래 남나요? ‘하나뿐인’, ‘지키듯’, ‘모든’ 가운데 하나여도 좋고, 떠오르는 말이 없어도 괜찮아요. 가족에 대한 기억 때문에 읽기 어렵다면 이 비유를 건너뛰고, 잠시 편하게 숨을 쉴 자리를 찾아도 괜찮아요.

“다시 장자여, 수행자는 자애와 함께한 마음을 첫째·둘째·셋째·넷째 방향으로 펼치느니라. 위·아래·가로·모든 곳, 온 세상에 넓고 크고 한량없으며 원한과 악의 없는 자애의 마음을 펼쳐 머무느니라. 그는 성찰하느니라. ‘이 자애의 마음 해탈도 지어지고 의도된 것입니다. 무엇이든 그러한 것은 무상하고 사라지는 성품입니다.’ 그는 이를 아느니라. 거기에 서서 … 위없는 안온에 이르느니라.”

Puna caparaṁ, gahapati, bhikkhu mettāsahagatena cetasā ekaṁ disaṁ pharitvā viharati, tathā dutiyaṁ, tathā tatiyaṁ, tathā catutthaṁ. Iti uddhamadho tiriyaṁ sabbadhi sabbattatāya sabbāvantaṁ lokaṁ mettāsahagatena cetasā vipulena mahaggatena appamāṇena averena abyābajjhena pharitvā viharati. So iti paṭisañcikkhati: ‘ayampi kho mettācetovimutti abhisaṅkhatā abhisañcetayitā. Yaṁ kho pana kiñci abhisaṅkhataṁ abhisañcetayitaṁ tadaniccaṁ nirodhadhamman’ti pajānāti. So tattha ṭhito …pe… anuttaraṁ yogakkhemaṁ anupāpuṇāti.

맛지마 니까야 MN 52 앗타까나가라 경 (Aṭṭhakanāgarasutta)

배경

다섯째 문은 자애의 마음 해탈입니다. 네 방향과 위·아래·가로·모든 곳, 온 세상이라는 범위와 넓음·큼·한량없음·원한 없음·악의 없음의 다섯 성격을 보존했습니다. 그 넓어진 마음도 지어지고 의도되어 무상하고 사라진다고 압니다. 공식 생략표 …pe… 한 곳은 “거기에 서서” 뒤 앞에서 온전히 제시된 두 결과와 세존이 밝힌 한 가지라는 닫음을 줄이고 마지막 위없는 안온을 잇습니다. 자애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자애의 고요마저 소유하지 않는 통찰이 결합됩니다.

묵상

원한과 악의 없는 넓은 마음도 지어지고 의도된 것이라는 말이 자애의 가치를 줄이는 듯 들리나요? 그 판단을 고치려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넓게 펼치는 일과 붙들지 않는 일이 함께 놓인 점을 살펴볼까요?

수행자들이여, 두 가지가 밝은 앎에 도움이 되느니라. 어떤 두 가지인가? 고요와 통찰이니라. 사마타를 닦으면 마음가 수행되고, 마음이 수행되면 탐욕가 버려지느니라. 위빳사나를 닦으면 지혜가 수행되고, 지혜가 수행되면 무명이 버려지느니라.

Dveme bhikkhave dhammā vijjābhāgiyā. Katame dve? Samatho ca vipassanā ca.

앙굿따라 니까야 AN 2.31 명지에 도움이 되는 법 경 (Vijjābhāgiyasutta)

배경

고요(사마타)가 마음을 닦고 탐욕을 다스리는 것이라면, 통찰(위빳사나)이 지혜를 키우고 무명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마타는 자비와 밀접합니다 - 멧따(자비) 명상은 마음을 고요하게 합니다. 따뜻한 마음이 집중의 기반이 됩니다. 위빳사나는 지혜와 밀접합니다 -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통찰입니다. 따라서 자비(사마타)와 지혜(위빳사나)는 수행의 두 축이며, 하나만으로는 완전한 깨달음에 이를 수 없습니다.

묵상

수행(혹은 삶)은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 있나요? 따뜻하지만 현실을 정확히 보지 못하나요(자비만)? 정확히 보지만 차갑고 냉소적인가요(지혜만)? 새가 한쪽 날개로 날 수 없듯, 둘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고따마 존자여, 마치 한 손으로 다른 손을 씻고 한 발로 다른 발을 씻는 것과 같습니다. 그와 같이 고따마 존자여, 계행으로 씻긴 것이 지혜이고 지혜로 씻긴 것이 계행입니다. 계행이 있는 곳에 지혜가 있고 지혜가 있는 곳에 계행이 있습니다. 계행 있는 이에게 지혜가 있고 지혜 있는 이에게 계행이 있습니다. 계행과 지혜는 세상에서 으뜸이라고 일컬어집니다.”

Seyyathāpi, bho gotama, hatthena vā hatthaṁ dhoveyya, pādena vā pādaṁ dhoveyya; evameva kho, bho gotama, sīlaparidhotā paññā, paññāparidhotaṁ sīlaṁ. Yattha sīlaṁ tattha paññā, yattha paññā tattha sīlaṁ. Sīlavato paññā, paññavato sīlaṁ. Sīlapaññāṇañca pana lokasmiṁ aggamakkhāyatī”ti.

디가 니까야 DN 4 소나단다경 (Soṇadaṇḍasutta)

배경

소나단다는 앞의 추상적 관계를 손과 발의 일상적 비유로 다시 설명합니다. 한 손이 다른 손을 씻고 한 발이 다른 발을 씻듯, 계행과 지혜는 한쪽만 작용하는 원인이 아니라 서로를 맑힙니다. 이어 “있는 곳”, “있는 사람”, “세상에서 으뜸”이라는 세 진술을 앞과 같은 순서로 반복합니다. 비유는 둘이 같은 개념이라는 뜻도, 하나가 먼저 완성된 뒤 다른 하나가 생긴다는 뜻도 아닙니다. 실제 행위가 이해를 씻고 분명한 이해가 행위를 씻는 상호 검증을 가리킵니다.

묵상

한 손이 다른 손을 씻는 그림에서 어느 방향도 홀로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 보이나요? 오늘의 한 행동이 앎을 맑히거나, 한 이해가 행동을 바꾼 작은 순간이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마음이 머물지 않으면 그냥 지나가도 괜찮아요.